한국법조인협회 재무이사 홍성훈 변호사

“제발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관심 좀 많이 가져주세요... 우리 성준이는 지금....”

이른바 ‘옥시 사태’가 발생한 지 5년 반이 흐른 지난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책임자들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주된 책임자 중 하나였던 (유)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라고만 한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구형이 무색하게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옥시에게는 벌금으로 '단돈' 1억5천만원이 선고됐다.

선고 후 피해자 임성준 군의 어머니 권미애 씨는 울면서 “우리 성준이는 15년 째 이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 사태를 유발한 책임자들한테 고작 7년만 선고할 수 있냐”며 억울함에 가슴을 쳤다. 

피해자 임성준 군은 첫 돌 무렵 옥시에서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을 흡입했고, 이후 만성 폐질환으로 지금까지 약 15년 째 자기 몸무게의 반도 넘는 산소통을 옆에 낀 채, 산소통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법원의 위 판결은 위법한 행위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 발생 여부를 심리하는 형사재판 절차다.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이번 법원 선고가 지은 죄에 합당한 '충분한 처벌'로 보일 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형사재판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 재판 절차에서는 '충분한' 손해배상액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요원한 상황이다.

손해배상과 관련해 우리 민법은 '실제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전보 배상'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선 '실제로 발생한 손해' 금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진다.   

자식을 잃거나 만성 폐질환으로 십수년 째 힘겨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피해자들에게 '실제로 발생한 손해 금액' 이라는 말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일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 게 하는 것은 '전보 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현행 손해배상 법제하에서는 법원이 자체적으로 위자료 산정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이상 그나마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충분한' 손해배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옥시 사태처럼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범죄 등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 오고 있다. 

실제 이런 국민적 요구와 흐름에 따라 최근 변호사 및 교수들로 구성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일명 ‘징손모’대표 김현 변호사, 김정욱 변호사)이 법조계 구성원 1천200명의 서명을 받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와는 별도로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징벌적 배상법을 입법 발의한 상태다.

'처벌적 손해배상' 제도라고도 불리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불법행위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불법행위자의 이득이 손해를 배상하고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 원칙이다.

한마디로 반사회적 행위로 얻은 이득은 실질적 피해 금액에 상관없이 모두 뱉아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을 기반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가 가장 활발하고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법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전체 손해배상 청구소송 가운데 10% 정도가 징벌적 손해배상 형식으로 청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작년 5월에도 미국 연방법원은 존슨앤존슨의 베이비 파우더에 난소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인정해 피해 여성에게 직접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천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6천200만 달러, 합쳐서 우리 돈으로 84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하기도 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악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사회적 약자, 즉 피해자가 민사 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불법행위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높을수록 가해자가 부담해야 할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이 많게는 직접 피해액의 수십 배에 이를 수 있어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문제에 관해 수년 간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지난 2012년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약 94% 정도의 변호사들이 현행 손해배상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은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기조에 부응하듯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격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연내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옥시 사태로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손으로 내 아이를 4개월 동안 천천히 죽였어요.”라며 흐느껴 울었다. 동생과 함께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홀로 살아 돌아온 아이는 자기 혼자 살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린 줄 알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며 옥시에서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매일 가습기를 청소했다가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는 "내가 유난을 떨어서 결국 아이를 죽였다."며 가슴을 치며 운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수백명에 이른다. 얼마면 될까. 이런 옥시에게 우리는 손해배상으로 얼마를 청구해야 할까, 얼마를 청구할 수 있을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한국법조인협회 재무이사 홍성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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