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못하게 만드는 개인회생 브로커

이호영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대한변협의 상임이사인 K 변호사가 개인회생 법조브로커에게 변호사 명의를 대여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까지도 변협을 대표해 언론에 나와 사법당국의 엄정한 대응 등을 주문해왔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더 충격적인 건, 우리 사회의 법조브로커 문제의 뿌리가 깊고도 넓다는 데 있다.

“빚에서 해방시켜 드립니다.”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제2·제3 금융권의 고리 대출이자에 시달리던 20대 회사원 김영희(가명)씨에게 ‘빚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인터넷 ‘개인회생’ 광고 문구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김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빚을 해결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빚에서 해방된다’ ‘새출발하게 해 준다’는 문구였습니다. 한밤중에 해가 뜬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법률사무소 O’라는 곳에 인터넷 접수를 통해 전화상담을 받게 되었고, 홍OO 사무장을 통해 ‘회생’으로 원금을 차근차근 갚을 수 있다고 상담을 받았고, 저희 둘이 함께 갚아나갈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해는 뜨지 않았다. 오히려 홍 사무장과 상담을 해 개인회생 신청을 한 사실 때문에, 김씨는 현재 사기 혐의로 형사재판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내가 변호를 맡은 의뢰인이다. 김씨는 왜 사기 혐의를 받게 됐을까.

개인회생이란 빚을 온전히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로 하여금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대한 성실하게 빚을 일부라도 갚게 한 후, 나머지 빚은 면책받도록 하는 제도다. 법원이 나서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준다는 점에서 빚의 늪에 빠진 채무자에게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 같은 제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빚을 갚지 못해 사창가로 걸어 들어가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젊은이는 빚을 갚기 위해 장기를 떼어다가 팔았다고도 한다. 이도저도 못했던 ‘세 모녀’는 송파의 반지하 방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눈을 감았다.

파산·개인회생 및 면책제도는 이처럼 불의의 채무자가 된 사람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채권자의 권리를 일부 희생시키는 대신 더 큰 희생을 막자는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가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 건 사무장 상담 때문이었다. 월 300만원 가량의 돈을 이자로 내야 했던 김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개인회생 제도를 알게 되었고, 사무장 상담을 받았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법률사무소에 방문을 했으면 응당 변호사로부터 상담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데, 김씨는 변호사 사무실까지 가서 변호사 대신 사무장에게 상담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었다. 김씨가 본인 소득에 비해 말도 안되게 과다한 대출을 받은 지 불과 몇 개월 안된 시점이었기에, 그 시점에서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전형적인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이’ 상대방을 속여서 재산상 이익을 편취하는 것을 사기죄라 한다. 연봉이 2천만원 갓 넘는 김씨가 대출중개인(대출브로커 문제 역시 법조브로커 못잖은 문제다)의 알선으로 1억2천만원 가까운 과다 대출을 받게 되었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난 시점에 ‘빚에서 해방된다’는 광고문구를 보고 개인회생을 알아보러 법률사무소에 방문했던 것이다. 본인의 상환 능력에 비해 과다한 대출을 받은 직후에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차용금 사기’ 수법으로, 우리 법원 판례에 따르면 유죄를 면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제대로 된 변호사가 김씨를 상담해줬다면, ‘지금 시점에서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사기 혐의로 고소 당할 거고, 이 경우 유죄를 면하기 어려우니 절대로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안된다’고 설명하고 김씨를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홍 사무장은 김씨에게 ‘회생을 통해 원금을 차근차근 갚아나가면 된다’고 설명하고 개인회생을 덜컥 신청해줬다(물론 신청 명의는 변호사 명의로). 그 결과 김씨는 현재 감옥에 갈 것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법조브로커는 법률 사건을 변호사에게 알선하고 그 대가로 변호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브로커에게 의뢰인은, 어떻게든 사건 수임으로 연결시켜서 돈을 받아챙길 수 있는 먹잇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변호사 역시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사건 수임 영업을 브로커들에게 맡긴 결과, 알아서 사건이 굴러들어오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 결과 우리 법조계에는 법조브로커와 ‘일부’(라고만 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부도덕한 변호사들의 공생 구조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 피해는 선의의 의뢰인들이 보고 있다.

‘사무장’, ‘국장’, ‘실장’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법조브로커들은 오로지 사건 유치에만 혈안이 돼 ‘반드시 된다’, ‘믿고 맡기면 된다’, ‘꼭 이기게 해주겠다’, ‘이런 사건은 전관한테 맡겨야 한다’, ‘반드시 꺼내주겠다’는 거짓말로 의뢰인들을 변호사에게 알선하고 중간에서 돈을 받아 챙겨왔던 것이다.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감정·대리·중재·화해·청탁·법률상담 또는 법률 관계 문서 작성, 그 밖의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변호사 아닌 자가 의뢰인을 유치하여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하는 것은 엄연히 변호사법 위반이고, 이들이 ‘법률 상담’을 하는 것 역시도 명백히 변호사법 위반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할 만큼 어려운 관문을 뚫고 변호사가 나던, 그야말로 변호사가 ‘귀하던’ 시절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대신 사무장이 상담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디 흔한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나보다.

국회에서 비서관 일을 하다가 나와서 변호사 일자리를 알아보던 때가 생각난다. 운 좋게도 서류를 통과하여 면접 자리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그 사무실의 대표변호사는 ‘우리 사무실은 사무장이 없는 사무실이다’라고 내게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난 운 좋게도 그 대표변호사 밑에서 첫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훗날 돌이켜 보니 사무장 없이 일하는 그 변호사님은 자랑스러운 분이 맞았다. 그만큼 법조계는 법조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의뢰인의 이익이 도외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때 시작돼 국민의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는 기나긴 사법개혁 논의 끝에 로스쿨이 2009년 개원한 이후, 연간 2천명 가까운 변호사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 지금 더 이상 변호사는 ‘특권층’이 아니다(당연히 개천에서 난 용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변호사들은 아직도 옛날 방식대로, 사무장에게 상담을 시키고, 법원에 제출할 법률서면을 대필하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가뜩이나 바쁜 ‘변호사님’께서 어떻게 일일이 모든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서면을 쓰냐 하겠지만 이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특권의식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변호사가 된 이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글 중 하나가 대한변협 취업정보센터에, 당시 활발한 시민사회활동으로 유명했던 어느 변호사가 올렸던 ‘사무직원 채용 공고’였는데, 그 공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 대신 서면 작업이 가능하신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변호사님’을 ‘변호사’로 보지 않는다.

‘비선 실세’는 대통령한테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에도 변호사 뒤에 어찌 보면 비선 실세들이 있으니, 이른바 사무장들, 법조브로커들이다. 변호사보다 사건 수임력이 더 뛰어난 사무장은 아예 본인이 사무실을 차려 변호사에게 월급을 주는 곳도 있는 지경이라 했다. 이들에게 잘못 사건을 맡겼다가는 변호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내 사건을 맡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법조브로커에게 당하지 않는 법을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방법은 심플하다. 첫째, ‘약’은 ‘약사’에게, ‘진찰’은 ‘의사’에게, ‘법률상담’은 ‘변호사’에게. ‘상담’은 반드시 변호사에게, 변호사에게‘만’ 받아야 한다. 혹시 변호사 사무실에 상담하러 갔는데, 변호사가 변호사 아닌 사람(법조브로커)을 대동하고 상담을 한다면 이 역시 의심해봐야 한다. 그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은 앞에 앉은 변호사가 아니라 그 옆자리에 앉은 비선 실세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인터넷 광고 글에 변호사 이름 대신 무슨무슨 센터, ‘실장’, ‘국장’ 이렇게 나오는 글은 클릭하지도 말 것. 우연히 클릭했는데, 변호사 이름이 안나온다면 이 역시 비선 실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법 위반 신고를 해 달라. 혹여나 대한변협이 미적미적거린다면,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뭐 할 일 없나’ 고민하고 있는 로스쿨 세대 젊은 변호사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한국법조인협회’로 연락을 주셔도 좋겠다.

법조계의 비선 실세들이 사라지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변호사법 위반’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강화하는 변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호영 ·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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