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사전에만 있는 말 '사리'... "한자어로 오인해 사용"
국립국어연구원, 1992년 '사구→모래 언덕' 국어순화 권고
법제처, 지난해 '사력' 어려운 법률용어 선정... '자갈' 권고

[법률방송뉴스] '사구' '사력' '사리' 라는 단어들을 들으면 어떤 뜻이 연상되시나요. 저는 '사력을 다하다', '라면 사리' 아니면 '부처님 진신 사리' 이런 내용들이 떠오르는데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26일)은 사구, 사력, 사리, 사(砂) 자 3인방입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입니다.

배우 김혜자씨가 햇살에 반짝거리는 억새풀 사이에서 엄마의 혼란스러움을 춤으로 표현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는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넓은 모래 언덕입니다.

'모래 사(砂)'에 '언덕 구(丘)' 한자를 사용하는 '사구(砂丘)'라는 말은 우리 법령에도 존재합니다.

습지보전법 제18조는 "훼손된 습지 주변에 해류·사구 등의 변화로 인해 자연적으로 조성되는 습지를 될 수 있으면 유지하고 보전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관련해서 국립국어연구원는 1992년 '사구'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선정하고 '모래 언덕'으로 순화해 쓸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렇지만 권고 27년이 지나도록 우리 법전에선 아직도 '사구'라는 단어가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모래 사(砂)' 자가 들어가는 어려운 법령 용어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시행령 제13조는 개발구역 안에서 토지의 형질변경, 토석·사력의 채취 등을 할 때는 관할 시장·군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상수원관리규칙 등 건축 관련 자치법규에 많이 나오는 이 사력이라는 단어는 '모래 사(砂)'에 '자갈 력(礫)' 자를 씁니다.

그냥 모래와 자갈이라는 단어인데 '사력(砂礫)'이라고 써 놔서 뜻을 헷갈리거나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 또한 법제처가 지난해 10월 '사력'을 '어려운 법령용어'로 선정하고 자갈로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언제 바뀔지 기약을 할 순 없습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
"더 쉬운 말로 다듬기 위한 것이니까 중국식 한자든 한국 전통 한자든 일본 한자든 간에 어려운 용어는 쉬운 용어로 바꾸는 것이..."

'모래 사(砂)' 자를 쓰는 황당한 법률용어, 더 있습니다. 바로 국어사전에도 없는 일본어 사전에나 나오는 '사리(砂利)'라는 단어입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제7조 자동차의 종류 조항 별표5에는 굴삭기, 로우더, 지게차, 사리채취기 등을 농림용 기계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사리, '모래 사(砂)'에 '이로울 리(利)'를 사용합니다. 직역하면 모래가 이롭다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 '사리'라는 단어는 자갈을 뜻하는 일본 고유어 '자리(じゃり)'에서 나온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치음표기'라고 해서 일본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관습이 있는데, 일본도 아닌 대한민국 법전에서 일본 고유어 '사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마치 무슨 한자인 것으로 잘못 오인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박진호 교수 / 서울대 국어학과]
“일본어 고유어 치음표기 한 것을 들여온 것이니까 이것을 우리가 한자어로 오인해서 쓰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약간 부적절한 면이 있는것 같고요. 게다가 일반인들은 들었을 때 자갈이란 뜻인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구와 사력, 사리. 뜻을 알기 어렵고 그 어원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용어 '모래 사(砂)' 삼인방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일까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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