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나경원 발언, 국가원수 모독죄"
우리 법전에 '국가원수 모독죄'는 없어
유신정권 시절 형법에 '국가모독죄' 신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국가모독죄' 폐지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증오 '막말'

[법률방송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국회 발언을 두고 ‘국가원수 모독죄’ 논란이 뜨겁습니다.

'카드로 읽는 법조', 국가원수 모독 논란의 역사를 짚어 봤습니다.

김태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연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경원 원내대표의 ‘김정은 대변인’ 발언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만하라고 야유를 퍼부으며 사과를 촉구했고, 자유한국당은 틀린 말한 것도 아닌데 들으라는 식으로 맞서며 국회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 직후 이해찬 대표는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나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청와대도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발끈했습니다. 

국가원수 모독죄,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들어본 말입니다. 역대 국가원수 모독 논란 관련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대통령 때문에 억장이 터져 ‘DJ 암’에 걸려 사망했다."

"일흔이 넘은 분이 사정사정하다 무슨 변고가 있을지 모르겠다."

"김대중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정부 시절, 야당으로 전락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김대중 대통령을 향한 독설입니다.

한나라당에 김대중 대통령은 "일흔 넘어서 사정사정하는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할 암덩어리“였던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모독’을 넘어 ‘비하’라는 단어로도 모자란 막말 발언들이 쏟아졌습니다.

'한국 외교사의 치욕', ‘등신 외교’, '미숙아'... 그 중에서도 압권은 박순자 의원의 말입니다.

연극을 빙자해 "노가리, 죽일 놈, 육시랄 놈, 개잡놈,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같은 막말을 쏟아 냈습니다. 

대통령을 향한 말이 아니어도 보통 일반 시민에게도 상욕 중의 상욕으로 여겨지는 욕을 ‘국가원수’에게 퍼부은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머리가 모자라는, 뇌 용량이 부족한 2MB, 죽여야 할 ‘쥐박이’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귀신 귀(鬼)자를 쓰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였습니다.

암(癌), 등신, 미숙아, 쥐박이, 귀태(鬼胎).

이 정도면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 정도가 아니라 저주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데, 사실 ‘국가원수 모독죄’라는 죄목은 우리 법전 어디에도 없습니다. 

비슷하게 구 형법에 '국가모독죄'가 있을 뿐입니다.

"내국인이 국외에서 또는 외국인 등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가기관을 모욕, 비방하거나 왜곡, 허위사실 유포 시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해당 조항은 박정희의 ‘ㅂ’자, 김일성의 ‘ㄱ’자만 꺼내도 잡혀가던 유신정권 숨 막히던 ‘막걸리 보안법’ 시절인 197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 외신기자들을 통해, 혹은 외국에서 기자회견과 시위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의 실상을 알리던 이들을 탄압하고 처벌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보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 바로 ‘국가모독죄’입니다.

그러나 이 '국가모독죄'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바람을 타고 1988년 해당 형법 조항이 폐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대통령을 향한 극도의 적개심과 모독, 저주. 이쪽과 저쪽 편 가르기와 증오.

30년도 더 전에 죽어 땅에 묻힌 국가모독죄라는 유령이 다시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있는 현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타깝습니다. 법률방송 '카드로 읽는 법조' 김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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