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처녀, 스무살에 '씨받이' 후처로 들어가
2남 1년 낳았지만 호적엔 본처 자식으로
52년간 '그림자 인생'... 한순간의 화 때문에

[법률방송뉴스] 같은 남편과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두 여자가 있습니다. 세상은 흔히 본처와 후처라 부르는. 그런데 70대 후처가 잠들어 있는 80대 본처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애욕이 다 끊어졌을 법도 한 나이의 할머니가 돼버린 본처와 후처의 끔찍한 살인극. 두 여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두 사람의 기구한 인연은 50년도 더 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수연 주연 영화 ‘씨받이’처럼 어떤 부부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당시 스무살이던 A씨를 그 집안의 후처로 들였다고 합니다.  

A씨는 벙어리라고 하는데 A씨 집에서 밥이라도 먹고살라고 A씨를 후처로 보냈을 겁니다. 

그렇게 들어온 스무살짜리 후처를 16살 위 본처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튼 후처로서의 일은 아이를 낳는 것, 바라던 대로 A씨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과 딸 하나, 2남 1녀를 낳아줬다고 합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아이들은 본처인 B씨가 낳은 걸로 호적에 올랐고, 벙어리에 가난으로 학교도 못 다녀 읽고 쓰는 법도 몰랐던 A씨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로부터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집안에 분명 존재하되 그림자 같은, 그림자여야만 하는 삶.

그리고 그나마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딸마저 지난 2000년 지병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앞서 보냈고 이듬해는 남편마저 사망했다고 합니다.

장성한 아들들은 집을 떠났고 그렇게 후처 A 할머니와 본처 B 할머니는 17년 넘게 단둘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림자처럼 살아온 A 할머니는 본처와 단둘이 살면서도 식사와 빨래 등 궂은일들은 자신이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딸과 남편은 죽고 아들들도 다 곁을 떠났는데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나는 죽도록 일만하고 본처는 본처라고 평생을 바깥으로 놀러다니기만 하고.    

어느 순간 A 할머니의 가슴 속엔 원망과 노여움이 자라기 시작했고, 본처 할머니는 술을 마시고 집에 오기만 하면 잠을 자는 A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는 등 불만과 화는 쌓여만 갔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식당 주방일을 하며 모은 1천만원을 본처가 몰래 숨겨뒀다고 여기게 되면서 본처를 향한 미움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7일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간, 결국 사단이 났습니다. 

본처인 89살 B 할머니가 술에 취해 들어와 자신을 흔들어 잠을 못 자게 깨우자 A 할머니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이미 잠든 B 할머니 얼굴을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숨지게 한 겁니다. 

1심 재판부는 양형 감경 요소를 고려해 권고형 범위인 징역 7년~12년보다 더 낮은 징역 6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오늘 원심과 같이 징역 6년을 선고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간적인 분노가 폭발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은 유리한 정황이지만 잠을 자는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인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원심의 형량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항소심 양형 사유입니다.

‘기구하다’ 할 때 ‘기구’(崎嶇)는 한자로 험할 기(崎)에 험할 구(嶇) 자를 씁니다. 험하고 가파른 굴곡진 인생. 평탄하기만한 삶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때로 현실은 때론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기구한 것 같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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