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엄마에 버림... 식모살이, 성폭행, 성매매 등 전전
주민등록 없어 의료보험도 안 돼... 법의 보호 사각지대
법률구조공단 도움, 69년 만에 '법적인 이름' 갖게 돼

[법률방송뉴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오늘(13일)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는 이른바 ‘유령국민’이라 불리는 호적이 없는 사람들, ‘무적자’ 구조 사례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연 주인공의 삶 자체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굴곡지고 기구하다고 합니다. 신새아 기자입니다.

[리포트]

1948년 생, 올해 71살인 길모 할머니의 기구한 삶은 할머니가 만 5살이던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길거리, ‘과자를 사오겠다’며 기다리라던 엄마는 날이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네 엄마는 너를 버리고 간 것이다.”

어둑해진 길가에 홀로 울며 서있던 5살 여자아이는 그렇게 생면부지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데려가졌습니다. 고된 ‘식모살이’의 시작이었습니다.

고아로서의 삶은 순탄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1966년 17살이 된 길씨는 식모 일을 하던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유흥업소로 흘러 들어갑니다.

살면서 만난 이런저런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자신을 때리며 착취하거나 속여서 돈을 훔쳐 달아나거나 대충 그랬습니다.

그렇게 험하고 힘들게 살아오던 길씨는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즐비한 시체를 붙들고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고 성매매의 굴레를 끊기로 결심을 하고 그 길로 목포를 거쳐 제주로 들어갑니다.

제주도에 정착한 길씨는 과수원이나 목장 일에서부터 식당일, 폐지 줍는 일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홀로 열심히 사는 길씨가 주민등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들은 틈만 나면 “어떻게 해보라”고 권유했고 길씨는 마침내 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2017년 초 허리 통증이 너무나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주민등록이 없어 병원 보험치료를 받을 수가 없자 주민등록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이봉헌 변호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통증도 너무 심하시고 이제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통해서 간간히 치료를 받아오시다가 자기 신분,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신 것...”

출생신고가 돼 있는지 안 돼 있는지도 모르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호적도 없는 상황.

이런 무적자가 길씨 할머니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게 공단의 설명입니다.

[이봉헌 변호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아직 구제받지 못한 무적자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중장년이 될 때까지 구제받지 못하고 길거리나 병원을 떠도는 무적자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데요. 이들 다수는 사회와 격리돼 혼자 살아가고 있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무적자 할머니에게 주민등록을 찾아주겠다는 공단의 노력 끝에 할머니는 2017년 7월, 제주시청에서 가족관계등록부 부존재 증명서를 발급받아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를 법원에서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옛날 엄마에게 버림받은 5살 때 처음 자신을 데리고 간 아무머니 성이 ‘길’씨였다는 것을 희미하게 기억해 내고 본인의 성을 길씨로 새로운 성과 본을 창설했습니다.

2017년 8월 1일, 할머니는 마침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69년 만에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을 손에 쥐어보게 된 것입니다.

[이봉헌 변호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병원치료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할머님이 69년 만에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고요.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낀 사건이었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은 “길씨처럼 사회와 격리돼 법적인 보호 없이 살아가고 있는 무적자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전국의 무적자들을 찾아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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