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색깔론'... "홍길동 시대도 아닌데" 법조계 "군사적으로 모호한 개념... 소모적 공방은 이제 그만"

 

 

[리포트]

2017년 대선 후보 2차 토론회.

느닷없이 ‘북한 주적’ 논란이 벌어집니다.

포문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열었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북한이 주적입니까? 북한이 우리 주적입니까? 주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아...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 후보가 단호한 어조로 질문을 잘랐지만, 유 후보는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아니, 아직 대통령 안 되셨으니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대통령이 될 사람이죠. 대통령은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될 사람이에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 주적이다’ 이렇게 나와 있는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국방부로서는 할 일이죠. 그러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설전은 감정 싸움 양상으로 번집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아니, 문 후보님께서 지금 대통령 벌써 되셨습니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그렇게 강요하지 마시죠. 왜냐하면 우리 유 후보님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되시면 남북간 문제를 풀어 가야 될 입장이에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가 북한군을, 주적을 주적이라고 못한다.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저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주적이라고 말씀 못하시는 겁니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제 생각은 그러합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아니, 주적이라고 말씀 못 하신다는 거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대통령 될 사람이 해야 될 발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주적’ 공방 이후 정치권에선 ‘문 후보가 국군통수권자가 될 자격이 있나’, ‘철지난 색깔론이나 이념논쟁 그만하라'는 등 장외에서도 설전이 이어지고 있고, ‘주적’이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점령하는 등 큰 화제와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스탠드업]

‘홍길동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와 이른바 ‘십자가 밟기’를 연상시키는 ‘북한 주적’ 논란, 북한이 주적인지 아닌지 헌법과 법률, 국방백서 등 관련 법조항과 문서, 법리 해석을 통해 알아 봤습니다.

대한민국 영토 조항을 규정한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어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헌법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돼 있고, 제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대통령의 국군 통수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무단 점거하고 있고,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우리 영토를 수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은 명백합니다.

다만 이 점이 바로 ‘북한은 주적’이란 규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실제 냉전이 극심했던 1960~70년대도에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부 공식문서 어디에도 ‘주적’이란 표현은 없었습니다.

주적이란 표현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4년, 북한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등장합니다.

남북회담에서 협상 분위기가 안좋게 돌아가자 북한 대표가 “전쟁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위협을 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95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 라는 문구에 처음 ‘주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국방백서에서도 ‘주적’ 이라는 표현이 사라졌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됩니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계기로 ‘위협’이 다시 ‘적’으로 바뀝니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표현이 ‘주적’이 아닌 단순히 ‘적’, 그리고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대상을 명확히 했다는 점입니다.

즉, 논리적으로 ‘주적’ 이라고 하면 ‘부차적인 적’이 더 있어야 하는데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부차적인 적으로 상정할 순 없는 점을 고려해 그냥 ‘적’이라고 한 겁니다.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 북한군을 분리한 것도 같은 취지입니다.

[신현호 변호사 / 법률사무소 해울]

“북한 전체적인 인민들·국민들을 대상으로 주적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이게 군사적으로 모호한 개념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아요. 정부가 전략적으로 이원화된 태세를 갖춘 것 같아요. 하여튼 나쁜 것들은 거기 있는 집권자들이지 나머지는 우리 국민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도 "북한은 도발엔 강력히 대응하면서도 어려울 때는 인도 지원도 하는 적이자 동반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즉 북한 자체가 ‘주적’은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적시돼 있다는 유승민 후보의 주장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가 잘못된 근거에 기초한 잘못된 질문인 셈입니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

“이런 공방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후보들의 안보관에 따라서 어떤 우리가 국방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안보에 대해서는 어떤 대비를 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치열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중국과 대만의 국방백서도 서로를 ‘독립 분열 세력’ ‘심각한 위협' 정도로 표현할 뿐,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통일 전 동독과 서독도 ‘군사적 위협’ 이라고 지칭했을 뿐입니다.

대선 때마다 ‘안보’ 이슈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홍길동 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대선 이슈가 ‘주적’ 논란에 매몰되는 현실이 씁쓸해 보입니다.

법률방송뉴스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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