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과속이 피해자 사망과 인과관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법률방송뉴스] 제한속도를 넘겨 자동차를 운전하다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70대 할머니를 치어 숨지게 했습니다. 과실이 누가 더 크든 어쨌든 사람이 숨졌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치사 혐의 유죄가 인정돼 1심에서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 사유 알아봅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지난해 10월 29일 경남 사천시의 한 도로를 운전하던 38살 이모씨는 오전 6시 22분쯤 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당시 78세 할머니를 차로 치어 숨지게 했습니다.

사고가 난 도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80km인데 이씨는 시속 85.9km로 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고 지점은 횡단보도를 약 50m 지난 지점으로 해가 뜨지 않은 데다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아서 어두침침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1심은 사망자가 어두침침한 도로를 무단횡단한 잘못이 있다 해도 이씨가 전방을 잘 살피는 등 안전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사고가 난 책임이 있다며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창원지법 형사2부이완형 부장판사)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오늘 밝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숨진 할머니가 도로에 뛰어든 순간과 차가 할머니를 충돌하기까지 사고 시간에 주목했습니다.

이씨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 기록을 보면 할머니가 도로에 뛰어든 시간과 충돌한 시간까지 간격은 3초가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이씨가 도로에 뛰어든 할머니를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순간과 충돌한 시간까지 간격은 약 1초에 불과했습니다. 거리로는 20m 정도 밖에는 안 됐습니다.

재판 과정에 제출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에 따르면 차량이 시속 80㎞로 달리다가 급정지하려면 3.53∼3.63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지거리는 약 47∼49m가 필요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점들을 참작하면 이씨가 제한속도인 시속 80㎞를 지켜 운전했더라도 할머니와 충돌을 피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이씨가 과속했다는 사정만으로 무단횡단하던 할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도로 주변이 어두웠고 횡단보도를 약 50m 지난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가 나타나리라 예측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하면 과속이 피해자 사망과 인과관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쉽게 말해 이씨가 제한속도를 지키고 전방을 잘 주시하고 운전을 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만큼 할머니를 사망케 했어도 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크든 작든 무단횡단 사고는 당한 피해자나 가족들도 힘들고 운전자도 힘든 것 같습니다. 유족들한테는 억울함이 운전자에게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없길 바라겠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