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두 자녀 상대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패소 확정
36년 전 판례 고수... 유전자 불일치 등 '혈연'보다 '가족' 법적 안정성에 무게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3일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선고에 앞서 모두 대법원 대법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3일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선고에 앞서 모두 대법원 대법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제3자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아이도, 혼인 중 아내가 혼외관계로 낳은 아이도, 법적으로는 모두 '친자'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A씨가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하고 양육하던 두 자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두 자녀 모두 친자 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우선 A씨의 첫째 아이와 관련, 타인의 정자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에 의해 출생한 자녀도 친자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친생 추정 규정을 적용해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부부가 합의해 인공수정을 한 이상 친자식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A씨 부인의 혼외정사로 태어난 둘째 아이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 결과 아버지와 자녀의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더라도 아내와의 혼인관계 중 임신·출산한 자녀라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 방식으로 첫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알고 역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는 2014년 부인과 불화로 이혼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부인의 혼외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검사 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 관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1심과 2심에서 패소했고, 상고심이 진행되면서 부부간 합의해 타인의 정자로 인공수정으로 낳은 자녀도 친생자로 추정되는지 유전자 감식결과 유전자형이 배치되는 경우에도 친생자로 추정되는지, 아니면 유전자형 배치가 친생 추정의 예외 사유로 인정될지 등에 관심이 집중됐다.

'친생자 추정 원칙'은 혼인한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 내용이다(민법 844조). 남편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친생 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만 제기할 수 있다는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2년 기간 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거나, 친생 부인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 아내가 낳은 자식은 법에 따라 친생자로 확정된다.

민법은 다만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에 해당할 경우에만 남편이 자식을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민법 865조), 판례는 그 예외 사유를 지극히 한정적으로 인정해왔다.

판례가 인정하는 친생 추정의 예외 사유는 ‘동거의 결여’ 단 하나인데, 이도 별거하며 가끔 만나는 경우가 아닌 장기간의 해외출장이나 교도소 수감, 가출 등 '처가 남편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외관상 사정이 명백한 경우'로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다. 판례는 1983년 이후 부부가 동거하지 않던 중에 출생한 자녀라는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을 친생자 추정의 예외로 인정했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 등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처럼 36년 동안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되던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 사유를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전자형이 배치되는 경우도 친생자 추정의 예외로 추가할 것인지가 대표적이다.

앞서 A씨에 대한 1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두 아이 모두 친생 추정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2심은 첫째 아이는 1심과 같이 판단했지만, 둘째 아이는 친생 추정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만 '법정 양친자 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대법원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심리과정에서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각층의 의견도 수렴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해 사건을 심리하는 것으로 과거 판례 변경 가능성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에 진행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친생 추정의 예외범위에 대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자녀로 추정된다"며 36년 간 이어져온 판례의 입장을 공고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관 3명은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A씨의 첫째 아이와 관련해 "인공수정 자녀의 친자관계는 민법상 친생 추정 규정의 적용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합치된 의사와 시술에 대한 동의를 근거로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A씨는 자신이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방식으로 시술을 받을 당시에 윤리적인 의미의 동의 절차가 없었고, 동의하지도 않았으며, 당시에는 생명윤리기본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3명은 또 A씨의 둘째 아이와 관련해서는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증명되고,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된 경우에는 친생 추정의 예외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이미 성년이 된 두 자녀와 사실상 부모자식 관계가 파탄난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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