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농지 강탈사건, 1960년대 구로공단 조성한다며 토지 강제수용

[법률방송뉴스] 군사정권 시절 '구로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유족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 등기 소송 재재심에서 대법원이 피해자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사건은 5.16쿠데타 발발 넉 달 뒤인 196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부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구로공단을 조성한다며 서울 구로동 일대 땅 약 30만평을 강제수용합니다.

1950년 서울시에서 농지를 분배받아 경작을 해오던 농민들은 "적법하게 분배를 받아 상환곡까지 납부 완료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냅니다.

오늘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지금은 사망한 이모씨도 당시 소송에 참여했고 1968년 7월 승소 판결을 확정받습니다.

그러나 승소의 기쁨도 잠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구로공단 조성에 차질을 우려한 박정희 정권이 권력기관을 동원해 힘으로 눌러 버린 겁니다.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정권은 검찰을 동원해 1968년부터 농민들과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십 명을 기소해 사법처리해버린 것입니다.

정부는 이 강압수사를 통해 받아낸 유죄 확정판결을 근거로 농민들이 승소한 민사소송에 재심을 청구해 결국 땅을 다시 회수해 갔습니다.

이씨 사건도 1989년 12월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 판결을 받고 땅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에 대해 "국가의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 상황은 반전의 계기를 맞습니다.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 연행해 가혹행위를 하고 권리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건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라는 게 당시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입니다. 

이에 사법처리됐던 당시 농민들과 공무원들도 재심을 통해 연이어 무죄를 확정받습니다. 

하지만 이씨의 유족이 위증죄로 처벌받은 김모씨에 대한 2013년 5월 3일 재심 무죄판결을 근거로 2013년 6월 17일 낸 1989년 대법원 민사소송 패소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재심 청구는 법원에서 각하됩니다.

관련법상 재심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0일 안에 재심을 신청해야 하는데 30일을 넘겨 신청했다는 것이 각하 사유입니다.

이후 이씨 유족은 수년을 더 기다려 2018년 또 다른 농민 박모씨 등이 재심 무죄를 받자 이번엔 30일 안에 재재심을 청구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 전 기각됐던 재심사유나 무죄 이유가 재재심 청구 이유와 같은 점을 들어 하나의 재심 사유로 봐야 한다며 이번 재재심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심 재판부는 국가 주장을 기각하고 이번엔 이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박씨 등에 대해 형사재심 결과 무죄판결이 확정된 사정은 김씨에 대한 형사재심 결과와 별개로 독립해 민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대법원도 오늘 여러 건의 유죄 판결이 같은 이유로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힌 경우 각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마다 민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새롭게 발생한다고 봐 원심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재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재심은 판결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후퇴 시켜 하자를 시정함으로써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판시했습니다.

국가나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당사자는 법무부장관이 됩니다. 해당 재재심 청구는 2018년 청구됐습니다. 2018년이면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입니다.

'검찰개혁' 이런 거대 담론도 좋지만 군사정권도 아니고 국가에 억울한 일을 당한 이런 소송에 국가가 꼭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야 했는지 씁쓸합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