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여성에게만 양육지원 자격 주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출입국당국 "불법취업 우려" 항변... 재판부 "통계상 남녀 불법취업 차이 없어"

[법률방송뉴스]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의 출산·양육을 도울 가족에게 방문동거 체류 자격을 부여할 때 이를 여성에만 한정한 현행 정부 지침은 시행령 취지에 반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고의영 부장판사)는 베트남 남성 A(37)씨가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체류 자격 변경을 허가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의 여동생은 2007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2014년 자녀를 낳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A씨는 여동생의 자녀이자 자신의 조카 양육을 돕겠다며 기존의 단기방문(C-3) 비자가 아니라 방문동거(F-1) 비자 취득을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국당국은 A씨가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체류관리지침이 그 근거가 됐다. 이 지침은 임신·출산한 결혼이민자가 부모에게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경우 양육 지원 목적으로 다른 가족에게 최장 4년 10개월까지 F-1 비자 자격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을 '만 18세 이상의 4촌 이내 혈족 여성 1명'으로 제한한다.

1심 법원은 이 규정에 따라 남성인 A씨에게 F-1 체류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그러나 외국인의 체류 자격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이 F-1 체류 자격을 여성으로 한정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어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F-1 체류 자격을 '피부양, 가사정리, 그 밖에 유사한 목적으로 체류하려는 사람으로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법무부 체류관리지침은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하다"며 시행령의 취지를 우선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침대로면 4촌 이내 여성 혈족이 없는 결혼이민자의 경우 출산·육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별을 당하는 것이 명백하다"며 "이런 차별적 취급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출입국당국은 A씨가 노동 능력이 있는 남성으로 국내에서 불법 취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결혼이민자 가족의 불법 취업 관련 통계를 봐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는 문화적 배경이나 여성의 노동참여율 등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주장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