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와 독자들이 궁금증을 가질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현지원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현지원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그래피티(graffiti)는 1960~70년대 미국에서 거리의 벽에 마커,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비주류와 힙합, 팝아트 문화를 반영한 그림 혹은 글자를 그린 것으로 본격화됐습니다.

그래피티는 제도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그 뿌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나 현대에는 그 대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경매장에서 거래되거나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바스키아의 1981년 작품 ‘무제’는 한화로 거의 195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거래되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한 해 동안 뉴욕시에는 1만5천건이 넘는 그래피티 불만 신고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래피티는 예술과 거리 공해의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소유권을 침해해서 만들어진 불법적 그래피티가 저작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그래피티 허용 구역 등에 합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만 이는 그래피티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래피티는 기존 문화에 대한 저항이 가장 큰 가치이며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자신의 가치(비폭력, 반전 등)를 그려,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드러나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불법성은 그래피티의 가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저작권성을 부정하는 것은 저작권법 제1조의 그 근본 목적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로 인정되고 저작물로 대우받는다는 것이 소유권 침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그래피티는 형법과 부딪혔을 때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서울중앙지법 선고(2011. 05. 13 2011고단313)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재판부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도심에 설치된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혐의로 형법 제141조 공용물건손상죄로 기소된 박모씨와 최모씨에게 각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해당 그림이 예술 표현인 그래피티로 위법성이 없다는 피고인 주장이 있었으나, 재판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시하며 “G20을 홍보하고 안내하는 공공물건인 포스터의 재물적 가치가 떨어지진 않았다고 해도 홍보 가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치 훼손이 적다고 할 수 없고 외국 사례를 보면 그래피티 작품도 다른 사람이 만든 표현물이나 창작품에 그려넣지는 않는다”라고 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재판부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해학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점, 새로운 예술 영역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벌금형을 택했습니다. 이와 같은 법원의 태도는 아무리 예술 표현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권리 침해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단순히 법조문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해당 그래피티가 지닌 풍자로서의 의미, 이를 통한 예술·표현의 자유와 공용물 손상으로 인한 공공의 이익 훼손을 좀 더 주의깊게 비교하였으면 어떠하였을까요. 향후 법조계의 판단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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