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전 홍보실장

검찰청 홈페이지에서 검찰 조직도를 살펴보면 고등검찰청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수원고등검찰청 순으로 되어있고, 서울고등검찰청 산하 지방검찰청은 서울중앙, 서울동부, 서울남부, 서울북부, 서울서부, 의정부, 인천, 춘천검찰청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는 지방우정청을 서울, 경인, 부산, 충청, 전남 순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나름 지역의 비중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우정청 산하 우체국은 광화문, 동대문, 서대문, 강남, 강동, 강서, 관악 순으로 상징적인 사대문 안 우체국을 제외하고는 가나다 순이다.

국세청은 지방국세청을 서울, 중부,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순으로 남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방조직체계와 가장 관련이 깊은 행정안전부의 홈페이지에서는, 지방자치 정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방식의 나열은 없다. 다만 보고서 등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순서는 광역시, 도, 기초지자체 순인데 광역시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순으로 도시 규모를 기준으로 삼았다. 도는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순으로 전통적인 방식인 ‘위에서 아래, 좌에서 우’의 순서를 따르고 있어 일반 국민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순서와 일치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 순서를 따르고 있다.

법원 조직도 검찰 조직 순서와 같은데, 굳이 행정안전부의 여러 보고서 순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체국이나 국세청과는 달리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지 도저히 상상할 길이 없다. 왜 서울, 대전, 대구 다음에 우리나라 제2 도시인 부산이 있으며 심지어 서울 소재 지방검찰청 순서는 왜 동, 남, 북, 서인지. 광역시인 인천보다 의정부가 먼저인지도 의아스럽다.

여러 가지를 나열할 때도 나름대로 순서가 있다. 예를 들어 4성 장군부터 이등병까지 수백명의 군인에 대해 인원보고를 한다면 낮은 계급인 이등병부터 시작해 부사관, 준위, 위관, 영관, 장성 순이 아니면 장성부터 아래로 인원보고를 해야 마땅하지 이 순서를 마구 뒤섞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또 어느 종합병원의 진료과목을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의 순서가 아닌 흉부외과, 소화기내과, 신경정신과, 재활의학, 안과와 같은 순서로 나열하면 어떻게 될까? 한 번 들어서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 싶다.

서울 소재 지방검찰청 중 어느 하나, 예를 들어 북부검찰청이 없다고 가정하고 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동부, 남부, 서부가 된다. 글로 쓰인 게 아니라, 말로 한다면 과연 어느 지역에 지방검찰청이 없는지 한 번 들어 기억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땅에서 어느 누가 방위를 동서남북이 아닌 동남북서로 말하고 기억한단 말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느 조직에서든 하위조직 간에 비중의 차이가 있고 또 그에 따른 우열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것은 지극히 내부적인 일일 뿐, 외부인 특히 그 조직의 사명을 향유하는 대중(소비자)과는 무관하다. 그런데도 내부의 논리를 기준으로 순서를 정해 설명하면 외부인들에게는 사실상 그 논리를 강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을 방해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은 공공의 편의성이다. 동서남북이 아닌 동남북서를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법조계의 이런 문화와 관례가 마뜩잖다. 그들만의 리그다. 세상은 변한다. 법원도 검찰도 사회적 합의인 법에 따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돕고 지키는 국가기관의 하나일 뿐이다. 국가공무원인 법관과 검사 그리고 소속원들이 공공서비스의 하나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기관이다. 유신독재 시절에는 ‘군관민이 일치단결하여’라고 했던 구호가 이제는 ‘민관군이 협력하여’로 바뀐 지 오래다. 법조계의 고객지향적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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