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들 피상속인 부동산 경매, 채무 청산... 세무서, 상속인에 양도세 부과
법률구조공단 “한정승인 상속 경우엔 상속 재산 한도 내에서만 책임질 뿐”

▲유재광 앵커= 사망한 동생의 재산을 한정승인 했다가 살던 집까지 세무서에 뺏길 뻔한 70대 할머니 얘기해 보겠습니다.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 신새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연인가요.

▲기자= 지체장애 3급 70대 정모 할머니 사연입니다. 정 할머니는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다고 하는데요. 일직 남편을 여의고 홀로 1남 2녀를 양육해 출가까지 다 시키고 전북 익산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난 2014년 정 할머니 동생이 사업에 실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됐습니다.

다른 선순위 상속인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서 할머니에게까지 상속 순위가 이어졌고, 정 할머니는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정승인을 하게 됩니다.

한정승인은 채무가 순 자산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상속을 받는, 쉽게 말해 빚 정리를 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상속을 받고 채무가 더 많으면 그냥 아무 것도 안 받고 손을 털면 되는 제도입니다.

▲앵커= 크게 잘못된 게 없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가 된 거죠.

▲기자= 세금이 문제가 됐습니다. 사망한 할머니 동생 명의 5개 부동산에 대해 경매가 진행돼 부동산이 낙찰됐고 채권자들이 낙찰 대금을 나눠 가졌습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는데 관할 세무서에서 정 할머니에게 2016년 3월, 무려 3억3천600여만원에 달하는 양도소득세를 내라고 납부 고지를 한 겁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양도세 고지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1년 이상 양도세를 체납하게 됐고, 세무서는 할머니가 살고 있는 익산 주택과 토지를 덜컥 압류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할머니 집과 땅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섰는데 할머니는 공매예고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양도세 체납과 압류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할머니가 세무서에 찾아가 “난 동생 부동산 판 거 1원 한 장 구경도 못했는데 왜 나보고 양도세를 내라고 하냐. 왜 우리집을 압류했냐”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세무서 공무원들은 늘 하던대로 “적법한 과세 집행이다. 억울하면 소송을 내시라”고 큰소리까지 냈다고 합니다.

이에 할머니는 딸과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압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사안입니다.

▲앵커= 정말 세상 억울할 것 같은데, 한정승인에서 세금은 또 제외인가 보네요.

▲기자= 과세 관청의 태도가 그렇다고 합니다. 한정승인을 했다 하더라도 상속인에 양도세를 부과할 수 있고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정 할머니 경우처럼 상속인 고유재산 압류 등 체납 절차를 밟아왔다는 것이 이번 소송을 대리한 공단 박왕규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앵커= 재판은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기자= 일단 공단은 정 할머니 주택과 토지에 대한 압류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과 함께 조세심판원에 압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도 함께 청구했습니다.

재판부는 전심 절차인 행정심판 결과를 지켜본 후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고, 이에 공단은 조세심판원에 민법 제998조의 2항인 “상속에 관한 비용은 상속재산에서 지급한다”는 규정을 들어 세무서 압류 처분이 위법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공단은 “한정승인은 상속 재산의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질 뿐”이라는 점을 조세심판원에 집중 부각했습니다.

▲앵커= 조세심판원은 어떻게 판단했나요.

▲기자= 조세심판원은 정 할머니와 공단 손을 들어줘 할머니 재산에 압류 등 체납처분을 한 것은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관할 세무서는 압류등기를 말소했습니다.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상속 받은 재산의 범위를 초과하여 상속으로 인한 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어 한정승인의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 조세심판원 판단입니다.

▲앵커= 의미가 상당한 소송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세무 당국은 그동안 양도세 같은 세금은 채무와 별개라며 한정승인 받은 상속인들에게 관행적으로 압류 등 체납절차를 밟았는데요.

세무 당국의 이런 태도에 대해 “상속인 보호를 위해 책임을 제한하고 있는 한정승인 제도의 취지 및 국민의 법감정에 반한다는 비판이 많았다”는 것이 공단의 설명입니다.

소송을 대리한 박왕규 변호사는 이와 관련 “이번 조세심판원 결정이 종전의 과세집행 절차에 변경을 가하고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이번 사건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앵커= 대법원 판례도 판례지만 세무서가 임의로 양도세 부과를 못하도록 한정승인 취지에 맞는 법제도 정비도 꼭 필요해 보이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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