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法과 세상] 양선응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선)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책을 통해 통찰하고, 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봅니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양 변호사는 "글을 통해 법의 대중화, 법의 상식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주

 

양선응 법률사무소 인선 변호사

어려운 시절 /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지난해 12월,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에 대해 우리 법원이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조 운영을 방해하고, 어용노조 설립을 통해 노조를 지배하고, 조합원 뒷조사를 지시하고 그 정보를 받은 행위가 업무방해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에 해당하는 범죄사실임이 공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노조와해 공작을 주도한 피고인들은 회사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따르기 위한 수동적 행위를 한 것일 뿐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무노조 경영 원칙'이라는 말은 대단히 기이하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헌법적 차원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는데, 무노조 경영을 한다는 것은 헌법적 권리인 노동 3권을 부인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자기 고백이 대단한 경영상의 원칙이나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유통된다는 점에서 기이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삼성 노조와해 공작 유죄 판결에서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1854년에 쓴 소설 '어려운 시절'이 소환되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유일한 목적이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사슴고기를 먹는 것이라 (귀족들이) 떠벌리는 구절이 있다. 21세기에 사는 피고인들이 19세기 소설 속 풍자 대상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하면서 자본가들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해 디킨스를 통해 일침을 가했다.

'어려운 시절'은 가상의 공업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 자본가들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수성가한 은행가이자 공장주인 바운더비는 이렇게 말한다. "이 도시에서 일하는 일손들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할 것 없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한 가지 갖고 있습니다. 바로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절대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결코 먹을 수 없단 말입니다."

한 번 노동자는 영원히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결해서 부당한 노동 현실에 저항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기생해서 계속 기생충처럼 살라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19세기 자본가의 이와 같은 저열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조와해 공작과 같은 불법적인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유죄 판결 이후 삼성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했다고들 한다. 회사 차원에서 노조와해 공작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진정성은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의심을 잠재우고 합법적인 노사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우선 '어려운 시절'에 등장하는 노동자 스티븐 블랙풀의 다음과 같은 호소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들을 얼마만큼의 동력인지로만 평가하고, 그들이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없고 추억이나 취향도 없고 지치거나 희망을 품을 영혼도 없는 합계 속의 숫자나 기계인 것처럼 통제해서는 세상이 끝나더라도 상황은 절대 나아질 수 없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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