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무 훈령" 대며 국회법 등 무시...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 오히려 뒤집어"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국회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국회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공소장을 제출해 달라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해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개가 원칙인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추 장관이 법무부 훈령을 근거로 대며 거부한 것은 국회법과 국회증언감정법 등 상위법까지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을 지켜야 할 법무부장관이 정치적 목적으로 위법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법무부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송철호(71) 울산시장 등 피고인 13명의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지난 4일 거부했다. 추 장관의 지시에 따른 거부의 근거로 법무부는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들었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국회에 이미 검찰 수사로 내용이 발표된 공소사실 요지 자료만 제공하고 "앞으로도 공소장 전문은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은 5일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어왔다"며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개된 재판에서 공소장의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별도로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자료에 의해서 알려지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변호사는 "상위법에 규정된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청을 법무부장관이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이유로 거부할 권한이 도대체 누구에게서 어떻게 주어졌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도 국회를 거쳐 공소장이 공개됐는데 추 장관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그 사건과 관련된 청와대 및 여권 관계자들의 사생활만 보호하겠다는 의도인가"라고 말했다.

국회법에는 국회 본회의나 위원회, 소위원회가 안건 심의나 국정감사·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등을 정부에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국회법 제128조는 '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는 그 의결로 자료 제출을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는 '국가기관이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증언할 사실이나 제출할 서류 등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정부 성향으로 비판받아온 참여연대까지 이날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 거부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투명하게 공개해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법무부 훈령일 뿐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군사·외교·대북 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발표로 말미암아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며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은 국회와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울산시장 선개개입 의혹 사건은 전직 청와대 수석과 현직 울산시장 등 고위공직자 등 13명이 선거에 개입하여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중대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라며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기존 관례와도 어긋나고 국민의 알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공소장 공개는 잘못된 관행이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그런 판단은 일개 부서의 장인 법무부장관이 아니라 국회증언감정법의 개정권을 가진 국회가 입법 형식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추 장관이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개된 재판에서 공소장의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재판 단계로 사건 내용 공개를 떠넘기는 식으로 발언한 데 대한 비판도 거세다.

헌법학자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법원 재판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인 공개 재판주의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원칙"이라며 공소장 공개도 마찬가지로 "비공개 결정을 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번에도 추 장관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문재인은 노무현을 어떻게 배신했나’라는 글에서 "국회의 요청에 따라 중요한 사건의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 국회증언감정법의 규정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돼 참여정부 사법개혁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혀왔던 조항"이라며 "이 역시 추 장관이 독단적으로 무시해 버렸다. 참모들이 반대하는데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비공개 방침을 밀어부쳤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준 그 권리를 다시 빼앗았다"고 썼다.

공소장 공개 거부로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 업적을 뒤집었다는 비판은 야당에서도 나왔다.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는 "지은 죄가 많아서 감출 것도 많은 것"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소장 공개를 처음 지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 번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해 공소장을 비공개한다고 했는데, 이는 유시민이나 할 수 있는 궤변을 법무부가 하는 것"이라며 "공소장엔 사생활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고 범죄사실만 명확히 적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도 “법무부의 공소장 공개는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그런데 돌연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서부터 공소장을 제출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법무부가 공소장을 비공개하자 이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고발인 자격으로 법원에 공소장 열람·등사 신청을 했다. 최교일 의원은 "소송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공소장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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