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실형 선고보다 치료받도록 하는 게 헌법정신에 부합"
'치료적 사법', '회복적 사법'... 법원 판결이 치유의 역할 해야

[법률방송뉴스] 어린 손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6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1심 징역형 실형을 깨고 집행유예로 풀어줬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앵커 브리핑’입니다.

68살 이모씨는 지난 2018년 12월 어린 손자들이 있는 데서 당시 65살이던 자신의 아내를 여러 차례 때리고 흉기로 찔렀습니다. 아내는 결국 숨졌습니다.

이씨는 당시 치매 상태에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씨 측의 심신상실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질병으로 장기간 수감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양형사유로 감안해 이같이 선고했습니다. 

1심 판결에 검찰과 이씨 양측 모두 항소했습니다. 

이씨는 하지만 구치소 수감 중에 면회 온 딸에게 자신이 숨지게 한 이미 사망한 아내를 거론하며 “왜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는 등 치매 증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에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 질병의 치료가 선행된 상태에서 죄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항소심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습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주거제한’과 ‘외출금지’를 내걸고 이씨에게 직권보석을 허가했습니다.

병원에는 1주일에 한 번씩 이씨의 치료 조사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이 치매환자에게 ‘치료적 사법’을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오늘(10일)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이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 병동의 사무실에서 열었습니다. 

공판 절차는 법정에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환자복에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탄 ‘피고인’ 이씨가 법정으로 바뀐 병동 사무실로 들어왔고, 병동 법정에는 법복을 입은 정준영 부장판사 등 판사 3명과 검사와 변호인, 법원 직원들과 방호인 등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씨의 아들도 재판을 지켜보는 가운데, 검사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도 “검사로서는 국가기능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며 1심과 같이 징역 1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씨의 국선변호인은 "5개월 치료하면서 공격 성향이 많이 호전됐다. 완치가 어려운 치매의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감독과 치료가 필요하다. 유족이자 피고인의 자녀들이 피고인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고 피고인을 계속 보살필 것을 다짐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최후진술에서 이씨는 “여기가 어디에요?”라는 아들의 질문에 “법원”이라고 말한 뒤 “현실에 수긍하겠습니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짧은 최후진술을 남겼습니다.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5년의 집행유예 기간 동안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치매전문병원으로 주거를 제한해 계속 치료받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고인에게 교정시설에서 징역형을 집행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 치료 명령과 보호관찰을 붙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계속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회복적 사법‘으로도 불리는 ’치료적 사법‘은 단순히 유무죄 판단을 내려 처벌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법원 판결이 치유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이 치유의 대상은 당연히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강간이나 살인 피해자나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돕는 내용 등입니다.

그 전제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될 것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치료적 판결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보겠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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