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 판단 뒤집고 파기환송... "국가유공자 대상은 아냐"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 인과관계 인정해야"

법률방송/ 그래픽=김현진
법률방송/ 그래픽=김현진

[법률방송뉴스] 군 생활과 자살 사이에 구타·욕설 등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어도 직무상 스트레스 등 상당한 인관관계가 인정된다면 보훈 보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국가유공자 대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2부(김상환 대법관)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A씨의 유족이 경북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및 보훈 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대구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망인이 자살 직전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망인이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등에 관하여 면밀하게 따지지 않고 망인의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2014년 6월 육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A씨는 이듬해 5월 휴가 중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입대 후 군 생활 동안 ‘사고 위험’, ‘즉각 도움 필요’ 등의 진단 소견을 수차례 받았다. 그러나 A씨는 이런 진단에도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 2015년 5월초 휴가 직전에 받은 검사에서도 “즉각적인 전문가 지원 및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소속 부대는 “A씨가 과거 받았던 정신과 치료 트라우마로 상담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상담이나 전문가 진료를 하지 않았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이 사망한 후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했지만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했거나 구타·폭언 등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A씨 어머니는 보훈처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보훈 보상대상자로라도 인정해달라며 예비적 청구를 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이 군 복무 중 정비관과 선임병의 지속적인 지적과 질책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르게 됐다"며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보훈처의 결정이 옳다고 봤다. 1심은 A씨가 상관으로부터 수차례 질책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은 점, 군 적응도 검사 결과 즉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소속 부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A씨의 선택은 개인적·정신적 어려움으로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상관의 질책 정도가 삶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보기 어렵고, 부대 내에서 구타나 폭행 및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도 1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가 국가유공자 대상은 아니지만 보훈 보상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르면 순직군경이 되려면 그의 복무와 사망이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보훈보상자법은 지원 대상자를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제외 규정에 '불가피한 사유 없이, 본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포함돼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해석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은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설명한 예시적 규정일 뿐”이라며 “직무수행과 사망의 인과관계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는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목숨을 끊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성격이나 개인적인 취약성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 영향이 있더라도 이를 달리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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