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기존 성립한 근로관계 일방적 취소는 부당해고"

[법률방송뉴스] 회사와 구직자 사이에서 취업을 알선해주는 헤드헌터를 통해 입사가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출근 전에 회사가 채용을 취소한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할까요, 출근 전이니 해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걸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의류·화장품 수출업체인 A사는 2018년 2월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온라인 화장품사업 해외마케팅 업무를 총괄할 인력을 구했습니다. 

이에 헤드헌터는 다른 업체에 다니던 B씨를 A사에 소개시켜 줬습니다. 

A사 대표는 한달 뒤인 3월 헤드헌터를 통해 연봉과 각종 인센티브 등 대우와 근로조건을 B씨에 전달했고, 헤드헌터는 B씨에 ‘최종합격’이라고 알렸습니다.

B씨는 이에 헤드헌터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입사는 6월 1일로 알고 있겠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헤드헌터는 이를 A사에 전달했습니다. 

입사가 확정된 B씨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왔는데 A사는 돌연 “입사를 하반기로 조정할 수 있냐”며 애초 조건보다 크게 후퇴한 조건을 다시 제시했습니다.

B씨는 이에 당연히 항의했고, 줄다리기 끝에 A사는 B씨가 출근하기로 한 6월 1일 최종적으로 ‘입사지원 불합격’을 통보했습니다.  

B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 모두 “A사의 행위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B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A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재판에선 헤드헌터가 B씨에게 전달한 ‘최종합격’이라는 문구를 말 그대로 최종합격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습니다.

A사는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근로조건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었을 뿐 채용을 구체적·확정적으로 청약한 사실이 없어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3부 유환우 부장판사)는 하지만 A사 주장을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B씨가 헤드헌터를 통해 A사가 제안한 근로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입사희망일을 구체적으로 특정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주요 근로조건이 정해진 상태에서 근로계약에 관한 청약과 승낙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어 “헤드헌터가 A사에 B씨 답변을 다시 전달했는데 A사는 당시 어떤 이의를 제기한 바도 없다”며 “헤드헌터가 ‘최종합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어떤 잘못이나 오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서 기존 성립한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A사의 불합격 통보는 부당해고”라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가 근로자의 채용을 내정했는데 아직 근로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자에게 해약권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A 회사가 B씨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낸 사실을 알고, ‘이제 갈 데도 없는데’ 하며 애초 제시한 근로조건보다 크게 후퇴한 조건을 다시 내건 것이라면 참으로 치사하다는 생각입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은 그게 어느 곳이든, 어느 분야든 좀 철퇴를 맞았으면 합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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