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대면 진료 안 해" 유죄, 2심 "의료법은 '대리 처방' 금지" 무죄
대법원 "환자와 만난 적 없어 진찰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파기환송

[법률방송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적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정부는 최근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간 의료계는 비대면 의료, 원격 의료에 대해 오진과 의료비 증가, 대형병원 쏠림 우려 등을 이유로 들며 반대해왔는데요.

관련해서 오늘 전화로 진료를 한 뒤 처방전을 내줬다가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1년 일어난 사건이 9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건데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45살 이모씨는 지난 2011년 2월 평소 환자로 알고 지내던 A씨로부터 부탁을 받습니다. 비만으로 고민하는 자신의 지인 B씨에게 치료약을 좀 처방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씨는 B씨와 전화 통화만 한 뒤 비만 치료제 ’플루틴 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줬습니다.

이씨는 환자를 한 번도 직접 보지 않은 채 처방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이씨가 B씨를 직접 진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이씨는 "B씨를 진료했지만 나이가 어려 처방을 보류했는데, A씨를 통해 다시 요청을 받고 처방전을 써줬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전경훈 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해 이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이씨가 2011년 2월 5일 B씨를 대면해 진료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고, 증거에 의하면 이씨가 B씨를 대면함이 없어 환자로 알게 된 A씨에게 그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결 이유입니다.

의료법 제17조 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를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하지 않았다면 처방전을 환자에게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게 1심 재판부 판단 취지인 겁니다.

당시 A씨와 B씨의 법정 진술이 엇갈렸는데, B씨는 의사 이씨의 주장처럼 이씨와 대면했다고 진술했지만 A씨는 "B씨는 그 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는 걸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B씨가 병원을 방문했다고 주장한 날 진료비 결제 내역이 없는 것을 근거로 이씨를 유죄로 봤습니다.

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는데요,

2심 재판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려 이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전화로 충분한 진찰이 있었다면 전화 처방이 가능하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의료법 제17조 1항은 의사의 ‘비대면 진찰’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대리 처방’을 금지한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대면 진찰하지 않은 점은 인정하지만 통화를 하면서 B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기존 질환 여부, 증상 등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며 “B씨가 나이가 어려 향정의약품을 뺀 약한 성분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처방전을 교부했다고 진술했던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B씨를 진찰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처방전을 작성·교부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즉 의료법이 ‘진찰 방식’을 규제한 것이 아니므로 전화 통화로 한 진찰도 진찰이라고 볼 수 있다는 판단인 겁니다.

이번엔 검찰이 불복해 상고했고,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법원에서 판결은 다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전화로도 처방은 가능하지만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과 상태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보고, A씨가 B씨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는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시입니다.

직접 진찰 여부를 놓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까지 나온 사건.

비대면 의료 서비스 시행을 놓고 의료법 등 법적인 토대의 마련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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