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피고인이 상급자이긴 하지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보기 어려워"
대법원 "피해자 자유의사 제압되어야 업무상 위력 아냐...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 반하면 추행"

인터넷 캡쳐.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인터넷 캡쳐.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법률방송뉴스] 직장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고 밀폐된 곳이 아닌 개방된 곳이더라도 상대의 의사에 반해 성적 농담 등을 반복했다면 추행으로 봐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로 기소된 고모씨(40)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고씨는 2016년 10월부터 11일까지 신입사원 A씨에게 성적인 농담을 반복하고,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음란물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고씨는 사무실에서 A씨에게 “화장 마음에 들어요. 오늘 왜 그렇게 촉촉해요”라고 말하거나 A씨의 머리카락 끝을 만지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는 식의 언동을 했다. 

고씨는 또 뒤쪽에서 손가락으로 A씨의 어깨를 두드리고 A씨가 돌아보면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앙,앙" 소리를 내는 등 A씨가 불쾌해하는 행위를 계속했다. 

고씨는 또 "불쾌하다. 하지 말라"고 거부 의사를 밝힌 A씨에게 퇴근 직전 업무 지시를 해 야근을 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떠넘기는 등 괴롭히기도 했다.

결국 고씨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2심 재판부는 "고씨가 업무상 A씨의 상급자라 하더라도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A씨를 추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추행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고씨를 상대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 직장 내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다는 점, 사무실 구조가 개방형이라는 점 등을 들어 “고씨의 행동이 '위력에 의한 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하지만 "원심 판결은 심리를 다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고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대법원은 먼저 "A씨는 상사인 고씨 바로 옆자리에서 근무하면서 업무를 배우고 지시·감독하에 업무를 처리했다”며 “고씨의 반복되는 성희롱적 언동에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낀 A씨는 제대로 잠도 못자고 결국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기도 했다"고 A씨의 행위를 질타했다. 

대법원은 또 “거듭되는 성희롱적 언동에 A씨가 거부감을 보이고 반발하자, 고씨는 회사일과 관련된 정보를 A씨에게 알려주지 않아 A씨가 일처리를 하는 데 애를 먹게 하기도 했다"며 "이런 일이 겹치자 A씨는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점을 살펴보면 고씨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20대 미혼 여성인 A씨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에 "나아가 고씨와 A씨 관계, 추행행위의 행태나 당시의 경위 등에 비춰보면, 고씨가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여기서 '업무상 위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추행은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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