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예규 "외국인 부모 성 따를 때 '현지 발음'대로 써야"
대만인 아버지 한자로는 '가(柯)'씨...현지 발음으로는 '커'씨
인권위 "일률적 원지음 표기 지양하라" 대법원에 개선 권고

[법률방송뉴스] ‘미란다 커’라는 호주 출신의 유명 모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커씨’가 있는지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이름이 ‘민수’이면 커민수, 은정이면 커은정, 뭐 이런 식인데, 어떻게 이런 성이 나왔을까요. ‘앵커 브리핑’입니다. 

한국인 여성 A씨는 대만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한국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했을 경우 아이 성을 엄마 성으로도 쓸 수 있는데, A씨는 남편 성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이름을 등록하러 간 A씨는 난감해졌습니다. 

일단 남편인 대만 남성의 성은 한자로는 가지, 줄기라는 뜻의 ‘가(柯)씨’인데 현지발음으론 ‘커’라고 한다고 합니다. 

관청에서는 ‘원지음’(原地音)이라는 단어를 쓰는 모양인데, 성을 표기할 때 원래 지역에서 사용되는 원지음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라고 합니다. 

아버지 성이 ‘트럼프’면 ‘트럼프 길동’ 이런 식이 되는 겁니다. 

이에 담당 공무원은 관련 규정을 따라 A씨 자녀의 성을 ‘커씨’로 등록했고, 그렇게 A씨 자녀는 가씨가 아닌 커씨가 됐습니다.

문제는 중화권의 경우 처음 들어보는 생소하거나 특이한 발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에 A씨는 “중화권 외국인 아버지 성을 따랐을 뿐인데 특이한 성 때문에 원치 않는 주목을 받거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등의 피해를 겪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습니다. 

A씨는 또 “같은 중화권이더라도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다른데 현행 규정은 현지 발음만 고집해 다문화 가족의 자녀 성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표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도 A씨 진정을 받아들여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아버지 성과 일치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외 없이 한국인 자녀들의 성을 원지음에 따라 등록하도록 하는 규정은 아동의 인격권과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 인권위 판단입니다. 

인권위는 또 “아동들이 외국인 성을 사용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가족 구성원의 국적이나 혼혈 여부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 소속감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이에 “다문화가정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맞춰 이런 제한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률적인 원지음 표기를 지양하고,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성 원지음 표기와 함께 우리 대법원은 ‘인명용 한자’라고 해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한자는 이름으로 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내 한 구청 가족관계팀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이 인명용 한자는 애초 왜 생긴 것인지, 무슨 필요와 효용이 있는 것인지 물어봤지만, “법원 업무를 위임받아 사무를 처리하는 것 뿐”이라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구청 담당자도 왜 있는지 모르는 인명용 한자. 생겨난 이유와 배경이 있겠지만, 지금도 그것들이 유효한지 꼼꼼히 헤아려 효용이 다했거나 불합리한 규제가 됐다면 법원이 알아서 개선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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