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운반 국과수 직원, 절도 범인으로 몰려... 법원 "직접증거 없다" 무죄 선고

▲유재광 앵커 =부검대기실 시신에는 분명히 있었던 금팔찌가 부검실에선 사라졌습니다. 범인으로 억울하게 몰린 국과수 직원 얘기해 보겠습니다.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 신새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일단 어떤 사연인지부터 볼까요.

▲기자= 42살의 장모씨 사연입니다. 장씨는 경상북도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대구지소에서 변사체를 부검실로 운반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여느때와 다름없이 근무를 하던 2018년 1월 5일 오전 9시 39분쯤 장씨는 부검대기실에서 부검실로 변사체를 옮기던 중 시신 팔에 있던 금팔찌가 없어졌다며 절도범으로 내몰려 재판으로까지 넘어가게 됩니다.

▲앵커= 장씨가 범인으로 몰린 결정적 이유 같은 게 있나요.

▲기자= 네, 부검대기실에 설치돼 있는 CCTV 녹화영상과 부검 사진이 장씨를 범인으로 몰아갔는데요.

9시 39분쯤 부검대기실 CCTV에 찍힌 영상엔 10돈짜리 시가 200만원 상당의 24k 금팔찌가 시신 왼쪽에 착용돼 있었는데, 10시 22분쯤 찍힌 부검사진엔 금팔찌가 감쪽같이 사라진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이에 검찰은 부검대기실 CCTV에 찍힌 사람은 장씨가 유일하고, 부검대기실까지 시신을 옮긴 것도 장씨이니 장씨가 중간에 금팔찌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장씨를 절도 혐의로 기소하게 된 사건입니다.

▲앵커= 이건 정황상 누가 봐도 장씨가 범인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요.

▲기자= 네, 그럼에도 장씨는 팔찌를 자신이 훔친 것이 아니라고 범행을 강하게 부인하며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변호를 요청했습니다.

누가 봐도 범인처럼 보이는데, 일관되게 범인을 부인하는 모습에서 거꾸로 공단은 장씨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판단해 차상위계층 법률구조에 나섰습니다.

▲앵커= 검찰은 뭐 논리를 세워 주장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장씨를 범인으로 단정했겠네요.

▲기자= 네. 부검대기실 CCTV 녹화영상엔 시신에 분명히 팔찌가 있었던 점, CCTV 영상엔 장씨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점, 그런데 부검실에서 찍힌 사진엔 시신에서 팔찌가 분리된 점, 장씨가 부검대기실에서 부검실까지 시신을 운반한 점 등을 들어 장씨가 금팔찌를 훔친 범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공단은 어떻게 장씨의 무죄를 주장했나요.

▲기자= 공단은 검찰 주장 자체는 사실임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이는 절도의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에 불과하고 직접증거가 없는 이상 장씨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앵커= 알 듯 모를 듯 어렵네요. 좀 쉽게 설명한다면 어떤 건가요.

▲기자= 예, 살인사건을 예로 들면 어떤 사람이 독극물이 든 음식물을 먹고 사망을 했는데 이때 독극물을 음식물에 넣는 장면을 본 목격자가 있다면 이 목격자의 증언은 살인의 직접증거가 됩니다. 꼼짝없이 빼도박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건데요.

그런데 살인에 쓰인 독극물을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사는 걸 봤다든지, 용의자에 독극물을 팔았다는 약방 주인의 진술은 살인의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만 될 수 있습니다.

독극물을 사갔고 해당 독극물이 사망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으니 용의자가 살인을 한 것으로 ‘정황상’ 볼 수는 있지만, 살인을 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는 못 되는 겁니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 사건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고유정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앵커= 고유정이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고유정의 남편이 아이가 덮고 있던 이불에 혈흔이 있었다고 주장한 점, 고유정이 아이가 죽은 뒤 아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버리는 등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있는 점 등 고유정이 5살 난 의붓아들을 질식해 살해했다는 여러 정황증거들이 제시됐는데요.

직접증거, 이른바 ‘스모킹건’은 검찰이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고유정이 남편에게 수면제가 든 약을 먹이고 아이를 살해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결국은 무죄를 선고했고,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무기징역이 선고됐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 인정은 재판부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입니다.

그렇다고 정황증거만 있다고 무조건 무죄가 되는 건 아니고 다른 여러 정황과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무죄를 판단하게 됩니다.

▲앵커= 복잡하네요. 공단은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장을 했나요.

▲기자= 네, 공단은 이번 사건에서 시신 운반 도중 외부충격 등으로 팔찌가 시신으로부터 분리됐을 가능성이 있는 점, 부검대기실 CCTV에 사각지대가 있는 점, 통로 부분에는 장씨 말고 다른 사람도 출입이나 접근이 가능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장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정황증거만으론 장씨가 범인임을 증명하기엔 부족하다”며 무죄를 주장한 겁니다.

▲앵커= 법원은 장씨 손을 들어준 모양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법원은 장씨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절도 혐의 무죄를 선고했고, 항소심도 1심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공소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유죄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다시 확인한 판결입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이승엽 변호사는 “과학적 채증의 발달로 정황증거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도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로 의뢰인의 무죄를 이끌어내 한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기게 됐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앵커= 네, 고유정 항소심 결심공판이 오는 17일 열린다고 하는데 이어 열리는 선고공판에서 항소심은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봐야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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