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하사, 성폭행 피해 여고생에 "괜찮냐"고 물어보고 '간음'
1·2심 "검사 제출 증거만으론 유죄 입증 어려워"... 무죄 판결
대법원 "항거불능 상태"... 원심 판결 깨고 유죄 취지 파기환송

▲앵커= 오늘(7일) '남승한 변호사의 시사 법률'은 성폭행 대법원 판결얘기 해보겠습니다. 남 변호사님, 일단 사건 내용부터 볼까요.

▲남승한 변호사(법률사무소 바로)= 2014년 7월 1일 새벽 4시경인데요. 당시 만 16세였습니다. 피해자가 가정집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최모씨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알몸으로 욕조에 기대 앉아있었는데요. 같이 술을 먹고 있던 육군 김모 하사가 화장실에 들어왔습니다.

피해자가 A씨인데 A씨에게 김 하사가 "괜찮냐"고 물어보고 A씨가 "괜찮아요"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괜찮다는 답변을 들은 김 하사가 A씨를 화장실 바닥에 눕혀놓고 또 간음했습니다. A씨는 당시 일을 잊고싶어서 고소하거나 이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는데 3년 뒤에 A씨가 2017년에 처음에 준강간을 했던 최씨로부터 페이스북 친구요청을 받았습니다.

A씨가 당시 일이 다시 생각나서 우울증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최씨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사과를 요구하니까 오히려 최씨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답했던 것 같고요. A씨가 최씨와 김 하사를 모두 고소했습니다. 김 하사에 대해서 군검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준강간으로 기소했습니다.

▲앵커= 이게 왜 강간이 아니라 준강간으로 기소한 건가요.

▲남승한 변호사=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서 간음하는 경우가 준강간인데요. 피해자가 이미 준강간을 한번 당했고 그래서 그 상태에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거나 또는 준강간 상태가 그대로 유지돼서 여전히 심신상실 상태라고 본 것으로 생각됩니다.

▲앵커= 1심 판결이 어떻게 나왔나요.

▲남승한 변호사= 1심은 김 하사가 간음행위 직전에 A씨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여러 차례 "괜찮다"고 대답한 점을 두고 합의 하에 이뤄진 성행위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김 하사가 A씨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 앞에서 서로 키스를 하고 이런 점 등을 근거로 해서 자발적인 성관계였다고 김 하사가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군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A씨를 간음했다. 그래서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 이게 1심의 판단입니다.

▲앵커= 이게 먼저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한 최모씨라는 사람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전혀 성폭행이라고 생각을 안 한 모양이네요.

▲남승한 변호사= 그런 것 같습니다. 재판부가 A씨가 대부분 상황을 잘 기억하면서도 성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만 기억을 못한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고요. A씨가 간음 직전 상황 그리고 간음 중의 상황, 간음은 성교를 말합니다. 이런 것은 명확히 기억하면서도 간음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상황만 유독 기억 못한다, 이것을 납득하게 어렵다, 이런 이야기고요.

김 하사의 주장에 의하면 성관계 합의를 했다는 것인데 그 부분, 시작할 때 합의가 있었다는 건데 그 부분만 A씨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 A씨 진술의 신빙성에 하자가 있다고 본 것이고요. 2심도 같은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하사나 최모씨 모두 최모씨도 성관계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버젓이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한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이 사람들은 성폭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 자체가 저는 잘 납득은 안 됩니다.

▲앵커= 대법원은 유죄로 판단했죠.

▲남승한 변호사= 네, 대법원은 이런 1심이나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보고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 2부 박상옥 대법관이신데요.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해자가 술을 먹고 구토하는 등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최씨로부터 준강간을 당한 직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피해자가 간음행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상황을 일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경험칙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것이고요.

피고인이 간음행위를 할 당시 김 하사가 간음행위를 할 당시 피해자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고 직전에 최씨로부터 준강간을 당한 상태, 그래서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입니다.

▲앵커= 어쨌든 여고생이 당시 괜찮다고 여러 차례 대답했고, 별다른 저항도 없었던 것 같고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판단했나요.

▲남승한 변호사= 일단 괜찮냐고 물어본 것 자체가 이미 강간당하고 구토하고, 술에 상당히 취한 상태에서 강간을 당하고 욕조에 알몸으로 기대있는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성관계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라고는 상식적으로 생각이 안 되거든요. 대법원도 마찬가지로 본 것 같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본 것 자체가 피고인 스스로도 이 사람이 괜찮지 않은 상태였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요.

집안 구조, 화장실 상황 이런 걸 감안하면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괜찮냐고 물어본 건데 그렇게 하고 성관계를 했다? 이게 말이 안 된 다는 것입니다.  A씨는 검찰조사에서 이미 강간의 피해자가 되는 부분이 가장 무서웠고 강간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뭘 물어보면 무슨 대답이든 괜찮다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이고요.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피해자가 괜찮다는 답변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형식적이니 답변을 한 것이다. 이게 피고인과의 성행위에 동의하는 취지의 답변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시입니다.

그러니까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를 했는데, 이것보다도 이게 성관계에 동의한 것 자체로도 안 보인 다는 것입니다. "너 지금 괜찮냐"고 물어본 것이지 "성관계해도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는 것도 아닌데 대법원은 "설사 성관계에 괜찮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정상적인 판단이냐" 그렇게 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런데 여고생이 왜 그런 장소에서 술을 먹고 있냐, 왜 몇 년 지나서 고소하냐 이런 말들도 있던데 이 대법원 판결 어떻게 보시나요.

▲남승한 변호사= 여고생이 그 시간에 성인들과 술을 먹고 있던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고생들이랑 술을 먹은 성인들이 더 문제죠. 여고생하고 그 시간에 성인 둘이서 술을 먹고 화장실에서 간음하고 그렇게 널부러져 있는 게 분명한 사람을 다시 간음한 사람이 문제인 건데 왜 여고생이 거기 있었냐고 피해자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 때문에 강간이 유발된 게 아니고요. 강간한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몇 년 동안 잊고 지내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사람이 가해자입니다. 어떻게 뻔뻔하게 친구신청을 아직도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고 나서 사과를 요구하는데 사과하면 넘어갔을 수 있던 정도였거든요. 

본인은 사과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사과하지 않고 무슨 잘못을 했냐고 따지는 사람을 고소한 게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군법원이 무려 1심, 2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하면서 피해자를 상당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16세, 고등학생이었는데 군법원이 이건 대단히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파기환송 됐으니까 아무튼 유죄가 선고될 것 같은데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지켜봐야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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