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논란 피하려 해당 안건 전부 부결... "법관대표회의 결정 정치적 이용 안돼"

[법률방송뉴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른바 ‘판사 사찰’ 안건을 부결했습니다.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판사 사찰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겁니다.  

찬바람 맞은 매미처럼 입을 다물다. 오늘 ‘뉴스 사자성어’는 금약한선(噤若寒蟬) 얘기 해보겠습니다.

입 다물 금(噤), 같을 약(若), 찰 한(寒), 매미 선(蟬), 금약한선(噤若寒蟬), 직역하면 ‘입을 다물기를 추운 날 매미같이 하다’입니다.  

입이 무겁다는 긍정의 의미보다는 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부정의 의미가 강합니다.

송나라 범엽이 쓴 ’후한서‘(後漢書)‘에 고사가 전합니다. 

후한 환제 때 두밀이라는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황제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던 환관들에 굴하지 않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보면 적극 천거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관직을 떠나 고향에 내려가서도 두밀은 유능한 인재를 적극 천거하고, 부패한 관리들은 처벌을 요구하는 등 정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같은 마을에 유승이라는 사람도 관직에서 은퇴해 낙향해 있었는데 두밀과 달리 유승은 침묵을 금으로 삼아 시와 서를 즐기며 은거했습니다. 

이에 마을 태수 왕욱이 두밀을 만난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승을 고결하고 훌륭한 선비라 칭송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라고 묻습니다.

낙향해서도 사사건건 목소리를 내며 정사에 관여하는 두밀을, 유승을 빌어 비꼰 겁니다.

두밀이 이에 답합니다.       

지선불천(知善不薦) 문악무언(聞惡無言) 은정석기(隱情惜己) 자동한선(自同寒蟬) 차죄인야(此罪人也). ‘좋은 일을 알아도 천거하지 않고, 나쁜 것을 들어도 아무 말이 없다. 사정을 감추고 자신만 아낀다. 스스로가 겨울 매미 같으니 이는 나라에 죄인이다’고 일갈한 겁니다. 

어제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판사 사찰’ 논란을 받는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당 문건엔 주요 사건 담당 판사 37명의 출신 고향과 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이 기재돼 ‘판사 사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법관대표회의에 이 사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쪽에선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주체’와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를 문제 삼아 판사 사찰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문건이 재판 대응을 위한 통상 대응이라는 입장인데, 정보 수집 주체가 공판검사가 아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라는 점에서 대검 해명이 적절하냐는 지적입니다.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 관련한 문제제기는 사법농단 수사 압수수색 등 다른 절차에서 수집된 비공개자료를 판사 정보 수집에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즉 공판검사 ‘개인’이 아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라는 ‘조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판사 정보 수집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방법의 자료 수집이 있었다는 비판입니다.

법관대표회의는 격론 끝에 해당 문건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판사 사찰 의혹을 심리할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점, 윤 총장 징계위를 앞두고 있는 점, 추가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법관대표회의는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판사 독립성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데 더 무게를 둔 결정입니다.

문구를 바꾼 3~4개의 수정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부결되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 문제에 입장을 내지 않는 걸로 정리했습니다.

이와 관련 법관대표회의 측은 “결론을 떠나 법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하고, ‘오늘의 토론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법관대표회의가 ‘판사 사찰’이라고 결론을 내리든, ‘사찰이 아닌 통상 재판대응 업무다’고 결론을 내리든 어느 쪽이든 엄청난 후폭풍이 뻔한 만큼 입장을 내지 않는 걸로 정리한 겁니다.

그럼에도 법관대표회의가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음에도, 일부 보수언론들은 “추미애가 졌다”거나 “윤석열 부담을 덜어줬다”거나 “여권의 판사와 검사 편가르기가 실패했다”는 식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은 것 자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점들을 감안하면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고심과 격론 끝에 판사 사찰 논란에 일체 입장을 내지 않기로 한 결정이 이해는 갑니다. 

입장을 내지 않았음에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과 상황이, 금약한선(噤若寒蟬), 대표법관들을 입 꽉 다문 겨울 매미로 만들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과 상황이 심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고 봄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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