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계약해지, 계약 자동갱신, 계약종료 후 의무 등 조항 꼼꼼히 살펴야

[김변의 국제법 이야기] 김익태 미국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미국 형사법원 국선전담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원,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국법자문사입니다. "복잡한 외국법이 국내 실무자들에게 쉽게 이해되길 바란다"는 김 변호사가 국제거래에서 발생하는 여러 쟁점들을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서구문명사에서 계약법의 시초는 기독교 경전인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십계명이라는 설이 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약속인 십계명은 이후 구약에 등장하는 율법들의 원형이며, 인간이 약속을 지킬 시 복을 주고 어길 시 화를 준다는 계약법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현대의 계약도 이런 점에서 철저히 쌍방적인 관계이다. 의무를 다하면 보상을 하지만, 의무를 안 지키면 책임을 물으며 계약은 해지된다.

영문계약서의 중요한 포인트인 '계약의 해지(Termination)'가 이런 상황을 규정한다. 계약을 위반한 인간을 벌하지만 다시 이행을 기대하며 계약을 연장해 주는 구약성서의 관용의 신이 아닌 이상에는 계약 위반이 해지로 이어지는 것은 합리적이며 타당한 수순일 것이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계약의 위반이 없을 때도 일방의 의사에 의해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다.

계약 위반을 사유로 든 계약의 해지가 '이유에 의한 해지'(Termination for cause) 라면, 일방적 해지는 '편의에 의한 해지'(Termination for convenience)이다. 상대방의 의무이행 정도에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질이다. 때로는 계약 해지를 당하는 상대방의 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해 보상에 대한 별도의 조항을 두기도 하나 갑질은 갑질이다.

문제는 이러한 독소조항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통상 이러한 독소조항을 넣는 경우에, 조항의 설치를 원하는 쪽에서는 그러한 조항이 자신들의 관례이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방적인 해지는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키고 계약의 체결을 종용한다. 서구식 문서 계약문화보다는 정(情) 관계에 더 익숙한 한국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문서보다 더 믿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독소조항을 둔 채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일이 잘되면 상관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여타의 사정으로 내 쪽에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여 일을 완성하려는 시점에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계약의 해지를 통보할 경우 아무런 구제방법이 없이 모든 손실을 내 쪽에서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절대로 두어서는 안되는 독소조항이다.

설령 이와 같은 일방적 해지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종류의 독소조항이 있다. 바로 귀책(Default) 발생 시 귀책의 해소기간을 주지않고 즉시 해지하는 조항이다. 일반적인 관례는 귀책의 발생 시, 귀책의 발생을 귀책당사자에게 통보하고 일정한 기간(통상 2주나 4주) 내에 귀책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통지를 통해 계약을 해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귀책 해소절차 없이 즉시 해지하는 경우 역시 유사 갑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신뢰하지 못할 때, 한 번의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 경우에 설치하는 조항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물품대금을 제 날짜에 지급하지 못할 경우, 연체를 하루도 용납하지 않고 거래를 끊는 경우다. 꼼꼼히 챙겨야 할 조항이다.

계약이 해지되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계약기간의 만료이다.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계약의 종료는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다. 계약기간 동안 서로 비즈니스도 잘 되었다는 말이며, 신뢰도 쌓인 경우이다. 이럴 경우, 자동 갱신(Automatic Renewal) 조항을 따로 두어서 계약 종료 일정기간 이전까지 계약갱신 의사 없음을 통지하지 않으면 자동 갱신되는 조항이 있다.

국내의 K라는 제조업자와 미국의 A라는 수입업자가 3년 동안의 계약관계를 종료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서로 관계는 좋았으나, 그동안 성장한 K사는 낮은 가격에 물품공급 계약을 체결한 A사보다 더 좋은 조건의 중국의 C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싶었다. 계약 종료 3개월 전 K사는 A사에게 계약갱신 의사가 없음을 통지하려고 계약서를 찾아 보았다. 계약서에는 계약 종료 6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않으면 자동 갱신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계약담당 실무자는 3개월이면 넉넉하리라 예상했으나, 이 조항을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C사와의 계약을 미루고 계약서에 나와 있는 대로 가격 인상도 못한 채 1년을 자동 연장해 주었다. 정신을 바짝 차린 K사는 이번에는 계약 종료 6개월 전 이메일로 계약갱신 의사 없음을 통지했다. A사는 아무런 답이 없었고, 갱신의사 없음 통지기간 마감인 6개월 시점이 지났다. 그러자 A사에서는 계약서에 있는 통지(Notice) 조항의 '국제우편, 등기우편, 팩스를 통한 통지'가 아니었음을 들어서 K사의 통지가 무효하므로 계약은 1년 더 자동 연장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계약서에는 이메일이 통지의 수단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좋은 조건의 계약의 추가 연장을 원하는 A사 입장에서는 K사의 통지에 대해서 시비를 걸려고 보니 그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며, 종종 변호사들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통지의 수단에 이메일을 포함시켜야 한다. 대부분의 국제거래는 이메일로 이뤄지는 시대에 이메일이 가장 일반적인 통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 지켜야 할 의무조항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하는 자료에 대한 파기 의무조항이 있는지 확인하고, 파기 의무를 꼼꼼하게 이행해야 한다. 또한,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하는 자료에 대한 계약해지 이후 비밀보장의 기간이 너무 길지는 않나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업체와의 거래조항(Non-Compete Agreement)이 포함되어 있는지, 있다면 몇 년인지를 꼭 확인해봐야 한다. 종종 계약이 종료되면 모든 의무가 사라진다고 속단하기 쉬운데 어떤 경우, 10년씩 계약종료 후 의무기간이 설정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모든 관계는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은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라도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고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울하거나 불평등한 마무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 때문이라도, 독소조항은 사전에 미리 제거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