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 할머니 성폭행 저항하다 남성 혀 절단, 정당방위 인정 못받고 징역형 선고
56년 만인 지난해 재심 청구... 재판부 "기각 결정하는 법관들 마음 가볍지 않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당시 판결의 '법령 위반' 다투는 비상상고 고려해야"

성폭행에 저항하다 남성의 혀를 절단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모 할머니와 최 할머니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의 집회. /SBS 화면 캡처
성폭행에 저항하다 남성의 혀를 절단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모 할머니와 최 할머니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의 집회. /SBS 화면 캡처

[법률방송뉴스] 57년 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모(75)씨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권기철)는 18일 최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재심 이유가 없어 기각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법적 안정성'을 위해 기각 결정을 한다면서도 "청구인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는 우리 재판부 법관들의 마음이 가볍지 않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재판부는 "과연 오늘날과 같이 성별 간 평등이 주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며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최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맡아 검찰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우희창 변호사(법무법인 법과사람들)는 "제 사건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인데, 재심 청구가 기각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재판부가 고심 끝에 법적 안정성을 위해 새롭게 드러난 증거가 '재심 사유'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의 변호인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법률방송에 "절차상 즉시 항고할 예정"이라면서 끝까지 다퉈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씨는 18세이던 지난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저항하다 노씨의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장소와 집이 불과 100m 거리이고,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변 집에 들릴 수 있었다"며 "혀를 깨문 최씨의 행위는 방위의 정도를 지나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내 한국여성의전화와 상담을 진행했고, 이후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지난해 5월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사건 발생 56년 만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등을 맡았던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법률방송과 통화에서 최 할머니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해 "항고를 하며 다투되,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하게끔 여론 환기를 하는 투트랙 방향도 있다"고 제안했다.

형사소송법 441조에 규정된 비상상고는 판결이 확정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 검찰총장 재량으로 대법원에 불복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지난 2018년 11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지적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한 바 있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강제노역을 시킨 혐의인 특수감금을 부정하고 무죄가 확정된 당시 판결에 대해 비상상고라는 제도를 통해서 바로잡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할머니 사건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피해자가 오히려 피고인이 된 억울한 사건"이라며 "여성에 대한 성폭행 상황에서 정당방위 법리를 잘못 적용해 나온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면서 "수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최 할머니의 주장은, 그때 당시 어떤 증거가 있었는지 기록이 모두 폐기돼서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해당 판결을 법령위반 판결로 보고 비상상고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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