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책임 조각사유 심신상실, 피해자 저항불능 심신상실을 다르게 판단"

▲유재광 앵커= 술에 취한 여성과 동의하에 모텔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필름이 끊긴 이른바 '블랙아웃' 상태였다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남승한 변호사의 시사 법률'입니다. 사건 내용부터 볼까요.

▲남승한 변호사= 2017년 2월 새벽입니다. 경찰공무원 A씨 당시 28살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우연히 당시 10대였던 B양을 만났습니다. A씨가 B양에게 "예쁘시네요" 하면서 이른바 '작업'을 걸었고 2~3분간 대화를 나누고 만남이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B양이 술집에 같이 갔는데 테이블에서 엎드려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A씨가 B양에게 물어보니까 B양이 "한숨만 자면 된다"고 얘기했다는 것이고요. A씨가 B양에게 "모텔에서 자자는 것이냐"라고 했더니 B양이 "모텔에 가서 자자"고 해서 함께 모텔로 갔다는 것이 A씨의 주장입니다.

▲앵커= B양이 당시 술에 얼마나 취한 상태였는지는 전해진 게 있나요.

▲남승한 변호사= 당시 B양은 A씨를 만나기 전에 1시간 동안의 소주 2병을 마신 상태였다고 합니다. 친구와 노래방을 찾아서 놀았던 모양인데요. 당시 B양이 친구의 신발을 신고 외투와 휴대폰은 노래방에 둔 채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는데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 뒤 급격하게 술기운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B양 진술입니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A씨를 만난 B양이 앞서 얘기한대로 A씨와 술집으로 갔고 그 다음에 노래방으로 가지 않고 B양의 친구는 실종신고를 한 것이고요.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모텔방에서 옷을 벗은 채 잠 들어있는 B양을 발견했습니다. A씨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앵커=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왔나요.

▲남승한 변호사= 일단 1심은 A씨의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는데요. 1심 재판부는 B양이 추운 겨울에 외투도 입지 않았고 함께 노래방에 간 일행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점 등에 비춰보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잃은 상태라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첫 눈에 서로 불꽃이 튀었다' 이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질타하면서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는데요. A씨는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앵커= 2심 판단에서는 어떻게 달라진 건가요.

▲남승한 변호사= 2심 재판부는 모텔의 CCTV 화면에 주목했습니다. 모텔 CCTV상으로 B양이 비틀대거나 부축받는 모습 없이 자발적으로 이동한 점에 주목했는데요. 재판부는 당시 B양이 준강제추행의 성립요건인 심신상실 상태에 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모텔로 편안하게 들어갔다는 취지의 모텔 직원의 진술도 한 근거가 됐습니다.

▲앵커= 이게 1, 2심 모두 나름 근거가 있어 보이는데 대법원에서는 다시 2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한 것이죠.

▲남승한 변호사= 네, 그렇습니다. 대법원 3부 민유숙 대법관 주심인데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재판부는 B양이 당시 일행이나 소지품을 찾지 못한 점, 처음 만난 A씨와 모텔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든 점, 이런 점에 비춰보면 심신상실 상태였다, 이렇게 판단했고요.

재판부는 당시 친구의 신고를 받고 충돌한 경찰이 모텔방으로 찾아왔는데도 B양이 옷을 벗은 상태 그대로 잠든 점을 언급하면서 판단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일지 아닐지 알코올 영향으로 추행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면 준강간죄·준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인데요. 이게 대법원 판시입니다.

▲앵커= 만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필름이 끊어진 상태라고 해서 유죄면 남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승한 변호사= 이게 소위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을 심신상실 상태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 첫 판례입니다. 아예 심신상실이라고 본 것은 아니고, 돌려보내서 심신상실 상태인지 판단해보라는 취지이긴 한데요. 대법원도 필름이 끊겼다, 소위 블랙아웃 됐다는 것인데 이런 진술만으로 알코올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충분한 심리로 심신상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블랙아웃 재판에 대한 심층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법원행정처를 통해서 관련 외부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는데요.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2년 9개월 정도 심리를 통해서 2심 무죄를 깨고 유죄 판결 취지로 환송한 것입니다.

▲앵커= 이게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건가요.

▲남승한 변호사= 네.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으로 인해서 곧바로 심신상실이라는 취지는 아니고 심신상실 여부에 대해서 아주 면밀하게 판단해야 한다, 충분한 심리를 해야 한다, 이런 취지니까 항소심에서 심신상실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긴 한데요. 재판부의 이런 취지대로라면 아무래도 심신상실로 인정돼서 강제추행의 요건이 인정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앵커= 일각에서는 동의해놓고 다음날 마음에 안 들면 “필름 끊겼다”고 하면 다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거 아니냐, 이런 반발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남승한 변호사= 필름이 끊겼다는 것과 관련해서 그렇게만 얘기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믿어주는 것은 아니고요. 얘기대로 이 재판부나 또는 1심 재판부에서도 필름이 끊겼는지 그래서 블랙아웃 현상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들고 심리를 했습니다.

진술만 가지고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당시 상황이나 이런 것을 보고 블랙아웃 현상이 있었다고 보면 심신상실 여부에 대해서 더 심리했어야 한다, 대법원은 이런 취지로 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진술만 가지고 인정될 것은 아닌데요. 아무래도 예전보다 처벌 가능성이나 이런 것이 더 높아진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앵커= 하나만 더 여쭤보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만약에 남성과 여성, 둘 다 필름이 끊어진 상태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둘 다 심신상실인가요.

▲남승한 변호사=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한다면 마찬가지로 남성, 범죄자 또는 피고인의 책임능력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심신상실은 원래대로 하면 책임능력을 조각하는 사유이긴 합니다. 그런데 음주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은 그간 잘 인정해오진 않았습니다.

예전에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해서 감경하던 것이 큰 비판을 받으면서 요즘 심신미약도 잘 인정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준강제추행이나 준강간의 요건이 되는 심신상실로의 주취상태와, 강간 또는 책임능력과 관련된 주취상태로의 심신상실을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아직 법원에서 구체적으로 설시한 것은 아니고 약간 그런 느낌이 든다는 정도의 생각인데요.

▲앵커= 좀 쉽게 말하면 그게 무슨 뜻인가요.

▲남승한 변호사= 조금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책임능력과 관련해서는 심신상실을 잘 인정하지 않고요. 주취로 인한 심신상실이나 미약을요. 그런데 지금 이 대법원 취지의 판결로 얘기하면 준강제추행의 요건이 되는 심신상실은 조금 더 넓게 인정할 가능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두 개를 다른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가해일 때와 피해일 때를 다르게 적용해서 봤다는 그런 말씀인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무튼 구설에 휘말일 일은 애초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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