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교과과정 심각한 결함... 변호사시험 '도구' 되면서 '법학'은 괴멸
로스쿨 출신 서울변회장, 로스쿨이 지지한 변협회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이제 로스쿨 제도가 법조인 양성 시스템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로스쿨 학생들이나 그 출신자 혹은 로스쿨 관계자들은 사법시험 존치론의 끈질긴 악몽에서 벗어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로스쿨이 갖는 문제점이 모두 소멸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로스쿨의 제도적 미비점이 때때로 국민들 앞에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을 원래 기획한 자들이 이 정부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있다든지 하여 그 수정을 완강하게 막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한국의 로스쿨을 중심으로 하여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결집된 세력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국가의 정책이 좌우되기 쉬운 나라에서 최대의 기득권집단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야간 로스쿨이나 방통대 로스쿨의 개설 혹은 일본식으로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고도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하는 예비시험제를 도입하여 작은 문을 만들어주자고 하는 논의가 있다. 그러나 번번이 강한 반대가 일어나 막힌다.

일본에서는 법무성이 예비시험제를 옹호하여 이 제도가 법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린다는 이유를 드나 우리나라에서는 로스쿨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는 측에서는 결단코 반대를 한다.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로스쿨에서 배우는 교과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하는 점이다. 이 결함에서 여러 부작용이 파생하나, 그 중의 중요한 하나가 법학이 전반적으로 급속한 몰락의 과정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로스쿨 설립 당시 내건 화려한 설립취지를 그대로 옮긴다면 ‘로스쿨이 법학교육을 정상화하고 전문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며 국가인력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에 비추어 무척이나 이율배반적인 현상이다.

법학은 그 안에 다양한 분야를 품는다. 헌, 민, 형, 상, 행정, 민사소송, 형사소송법의 7대 기본분야가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격의 기초법학이 있다. 법철학, 법제사, 법사상사 등이 그것이다. 법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기초법학의 일정한 지식 습득이 필수적이다. 그 외 국제법, 국제거래법, 지적재산권법 등 근현대사회에 와서 비로소 튼튼한 영역을 확보한 법분야가 있다.

로스쿨 시대에 기초법학이나 국제법 등의 과목은 거의 괴멸 상태에 빠졌다. 로스쿨을 변호사시험을 위한 도구로 많은 학생들이 인식하면서 변호사시험 과목이 아닌 것은 수강신청 자체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 학기초가 되면 이런 과목들은 수강신청자가 없어 숱하게 폐강된다. 단 두 명이라도 신청하면 개설을 허용하나, 0명과 1명, 2명 사이에 많은 과목이 빈사 상태로 놓여있다. 이렇게 배우려는 학생이 없는데 어찌 그것들이 학문으로서의 존립기반을 갖겠는가.

기본과목은 또 어떠한가. 로스쿨은 3년 동안의 단기간에 법학이론과 실무능력을 동시에 습득하여 훌륭한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을 주된 골자로 하여 설계되었다. 그러나 우리처럼 법학에 있어서 개념을 앞에 놓고 이를 설명해가는 것이 법학의 핵심인 대륙법체계 국가에서 이렇게 단기간의 법조인 배출과정을 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잘못된 설계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로스쿨에 들어와 허겁지겁 과정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방향조차 찾기 힘들다. 한편 로스쿨 밖의 일반 대학 법학부는 로스쿨 시행 이후 점차 폐쇄, 축소의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법학부 출신인 로스쿨 학생은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없다. 그 결과 로스쿨 학창시절 내내 우왕좌왕하며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기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로스쿨의 내부보고서를 보면 잘 적시되어 있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로스쿨 시행 전처럼 방대한 교과서에 따라 체계적인 공부를 해나가는 학생은 없다. 그런 학생은 당연히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로 학원강사급의 사람들이 쓴 얄팍한 분량의 축약서를 바탕으로 하여 속전속결을 노릴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책을 한 권 펴내기 위해서 교수는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참조하며 연구를 거듭해야 하는지 모른다. 몇 년간에 걸쳐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어렵게 책을 펴내어도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려면, 매해 새로 나온 판례나 입법 등을 참고로 하여 새 판을 내어야 한다. 개정판 작업을 하는 데만 해도 몇 달이 걸린다.

그런데 우스운 것이, 책을 한 권 내어도 이것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연구업적상 논문 한 편과 같이 100점으로 매겨진다. 개정판은 30점, 50점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내어도 아까 말한 이유로 사보는 학생이 극히 제한적이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책을 내지만, 대부분은 교수들이 속앓이를 하며 자기 돈을 내어 하는 자비출판이다. 과거에는 좋은 책을 내면 학생들이 많이 사보아서 저자는 그 수입으로 안정된 노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까마득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책 한 권 내는 것이 그토록 어렵고, 내어봤자 연구실적상 별로 좋을 것도 없고, 판로도 거의 막혀버렸다. 도대체 어느 교수가 감히, 방대한 연구성과가 집적된 책을 내려고 애쓰겠는가?

이런 각박한 현실 하에서도 여전히 충만하고 치열한 사명감, 학자의식으로 책을 내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연구하는 교수들도 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이들이다. 그러나 짤막하고 단편적 주제를 다루는 연구논문이 법학의 현장을 횡행한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자조적인 표현으로, 필자와 심사위원 외에는 읽지 않은 채 지나친다고 흔히 말해진다. 물론 로스쿨 학생들도 외면한다. 이렇게 하여 법학의 연구에 투여되는 연구총량은 줄어드니, 법학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학의 몰락은 로스쿨 시대의 서글픈 현상이다. 또한 이에 따라 법학의 학문후속세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법학 분야의 낙후국으로 빠르게 전락할 것이다.

서울변호사회장으로 로스쿨 출신이 되었다. 대한변협회장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민 사람이라고 들었다. 두 분이 앞으로 해나갈 역할이 크다. 두 분은 무엇보다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단순히 로스쿨에 대한 비난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로스쿨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직시하며 이것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로스쿨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길이고, 또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나 로스쿨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부디 자신을 로스쿨을 지금 있는 그대로 옹호해야 하는 대표자가 아니라, 공익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는 유력한 단체의 대표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한국 법학이 처한 위기 국면을 돌파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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