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부장판사, 이석태 재판관 기피 신청... 26일 변론준비기일 연기
"민간인 탄핵심판 실익 없어, 각하해야" vs "법관 탄핵 기준 설시해야"

[법률방송뉴스]내일(26일)로 예정됐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첫 변론 준비기일이 연기됐습니다. 

오늘 ‘뉴스 사자성어’는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한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얘기해 보겠습니다.

26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던,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심판을 받게 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첫 변론 준비기일이 연기됐습니다. 

헌재는 어제 “법관 탄핵 사건 변론 준비기일을 변경하는 통지를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에 했다”고 밝혔습니다. 

준비기일 변경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탄핵심판 주심을 맡은 이석태 헌법재판관에 대해 그제 ‘기피신청’을 낸 데 따른 것입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이석태 주심 재판관이 과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과 민변 회장을 지낸 점을 들어 탄핵심판 재판부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사유에 세월호 관련 재판 개입과 ‘민변 회원 체포치상 사건 재판’ 양형이유 수정 등 재판 관여 혐의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에 임성근 부장판사가 세월호 특조위원장과 민변 회장을 지낸 이석태 재판관에게선 자신의 탄핵사유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피 신청을 한 겁니다.

세월호 관련 임성근 부장판사는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박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개입했습니다.  

1심 판결문을 미리 받아보고 "청와대에서 서운해 할 수 있다"며 판결문 문구를 수정하게 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가 법관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이긴 하지만, 다른 법관 재판에 관여할 ‘직권’이 임성근 부장판사에 없다며 직권남용을 무죄로 선고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심판 첫 변론 준비기일을 사흘 앞두고 이석태 재판관 기피신청을 받아든 헌재는 재판관 8명이 기피 여부에 대한 심리에 착수했지만, 첫 변론 준비기일인 26일 전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준비기일 연기를 통지한 겁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기피신청의 경우 민사소송법 절차를 준용하는데, 민사소송법은 기피신정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소송절차를 정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헌재가 변론 준비기일을 연기 한 건데, 추후 기일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법관 임기는 일요일인 이달 28일 자정을 기해 종료됩니다.

이에 따라 임성근 부장판사는 3월 1일 이후 탄핵심판 재판이 열리게 되면 법관 신분이 아닌 자연인 신분으로 헌재 탄핵 심판정에 서게 됩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법관 탄핵심판은 ‘법관’을 대상으로 하는데, 임성근 부장판사가 ‘자연인’이 된다면 본안사건 심리 없이 사건을 각하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설입니다.

탄핵심판 인용 주문은 “임성근 부장판사를 파면한다”인데, 이미 법관이 아닌 사람을 파면할 수는 없으니 재판의 실익이 없어 직권으로 재판을 종결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형사재판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 유무죄 판단 없이 재판을 그대로 종결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예정대로 26일 첫 변론 준비기일이 열렸더라도 임성근 부장판사 퇴임 전에 결론이 나긴 어려웠겠지만, 아무튼 ‘엘리트 법관’ 출신인 임성근 부장판사가 이런 점까지 감안해 이석태 재판관 기피신청을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반면 임성근 부장판사가 심판대상 적격을 상실해도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사건이니만큼 과연 탄핵사유가 되는지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해당 사건이 헌법적으로 선언을 해야 할 중대한 사건이라면 심판대상 적격이나 재판 실익이 없더라도 판단해서 인용 또는 기각 사유를 설시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시비(是非)를 가리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유명한 조선후기 문인 난고(蘭皐) 김병연이 이 옳을 시(是) 자와 그를 비(非) 자, 두 글자만 써서 지은 칠언절구의 ‘시시비비 시’(是是非非詩)가 있습니다.

김병연의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은 19세기 초 농민항쟁인 ‘홍경래의 난’ 때 홍경래에 투항했던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공적을 날조했다가 발각 나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역사에선 ‘김익순의 정법’이라 일컫는데, 왕을 능멸한 죄로 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늙은 종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당시 5살이던 김병연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3년 뒤 “김익순의 일은 김익순에게만 묻기로 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나왔고, 강원도 영월로 숨어든 김병연의 어머니는 몰락한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자식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김병연은 20살 되던 해 과거에 응시했는데 시제가 ‘탄 김익순 죄 통우천’(嘆 金益淳 罪 通于天),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았음을 탄하라’였습니다.

김익순이 조부인지 모르는 김병연은 일필휘지로 이렇게 통박합니다.

임금 앞에서 꿇던 신하의 무릎을 흉적 홍경래 앞에서 꿇었으니, 너는 죽은 혼조차 황천에도 못 갈 것이다. 임금을 버린 그 날, 너는 조상도 버린 것이니, 너는 한 번은 고사하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 너의 치욕은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지리라.

후련한 문장으로 장원급제를 한 김병연은 어머니에게서 집안 내력을 듣고는 망연자실, 세상을 등지고 얼굴을 가리는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라 평생을 떠돌다 쉰 일곱에 객사합니다. 

“조부는 나라를 배신했고 나는 조부를 배신하였으니, 하늘 아래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몸이다”는 게 김병연의 자조와 한탄입니다. 

시시비비비시시(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해도 꼭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비비시시비비(是非非是是非非)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해도 꼭 그른 것도 아니다. 시시비비시시비(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 그 자체가 시비다.

김병연의 ‘시시비비 시’(是是非非詩)입니다. 시비는, 옳고 그름은 가려 무엇 하리. 영원히 옳은 것도 영원히 그른 것도 없다. 왕을 능멸한 역적을 역적이라 했는데, 조부의 죽음에 비수를 꽂고 가문을 부인한 게 된 방랑시인 김삿갓의 허무함과 자조가 쓸쓸하게 묻어나는 시입니다.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나는 맞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 교수들이 뽑은 교수신문 선정 지난해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시비(是非). 세상의 옳고 그름이라는 게 일도양단 반으로 딱 갈라지는 건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무엇에든 이유가 있고 곡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법관과 재판 독립, 법관 탄핵에 대한 이정표를 세운다는 측면에서 사건을 각하하지 말고 사건을 계속 심리해 시비를 가려보는 게 어떤가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탄핵심판이 임성근 부장판사 개인을 파면하고 말고 하는 문제는 넘어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겠습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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