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정 사건 언급, 가해 학생 특정한 것 아냐... 명예훼손 무죄"

▲유재광 앵커= 일상생활에서 부딪칠 수 있는 법률문제를 법제처 생활법령정보와 함께 알아보는 ‘알쏭달쏭 솔로몬의 판결’, 오늘(22일)은 SNS 계정 프로필 상태 메시지와 명예훼손 얘기해 보겠습니다.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기자= 초등학생 김지훈(가명)군은 같은 반 학생인 박준서(가명)군에게 따돌림과 괴롭힘 등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군의 엄마 이가희(가명)씨가 학교에 신고를 했고, 그 결과 박군은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보복행위 금지와 교내봉사 조치를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군의 엄마 이씨는 이러한 학교 처분에도 분이 풀리지 않자 자신의 카톡과 페이스북 등 개인 SNS 계정 프로필에 “학교폭력범 OUT. 접촉금지!!”라는 글과 주먹 모양의 이모티콘을 설정해 놨는데요. 이런 경우 이씨의 프로필 상태 메시지가 박군에 대한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가, 이런 상황입니다.

▲앵커= 양측 입장은 어떻게 되나요.

▲기자= 일단 기본적으로 “개인 SNS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쓴 글은 그 사건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박군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것”이라는 게 이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박준서군의 엄마 백미영(가명)씨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 프로필을 접한 사람들은 준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나 평가를 하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처벌해야 한다”는 게 백씨의 주장인 건데요.

반면 이씨는 “'학교폭력범이 준서다'라고 딱 찍어서 이름을 쓴 것도 아니고 개인 SNS에 내 감정 상태나 생각, 의견을 쓴 것뿐이므로 아무 문제도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앵커= 관련 법령이나 판례가 어떻게 되나요.

▲기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른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특정된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해야 합니다. 즉 ‘피해자’가 특정됐느냐와 구체적인 ‘사실’이 적시됐느냐,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건데요.

“여기에서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은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띄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요건이 충족되기 위해서 반드시 구체적인 사실이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특정 표현에서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유추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내용을 주위사정과 종합하여 볼 때, 그 표현이 누구를 지목하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82. 11. 9. 선고 82도1256 판결, 대법원 2011. 8. 18. 선고 2011도6904 판결,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1226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또 “특정 표현이 사실인지 아니면 의견인지를 구별할 때에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증명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해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 1998. 3. 24. 선고 97도2956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특정 표현이 ‘사실’ 또는 ‘허위사실’인 경우는 명예훼손으로, ‘의견’인 경우는 모욕죄를 적용해 의율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이 사건 판결은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결론적으로 명예훼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먼저 구체적인 사실 적시 여부와 관련해 대법원은 “피고인은 ‘학교폭력범’ 자체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특정인을 ‘학교폭력범’으로 지칭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는데요.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9도12750 판결)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피고인의 지위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실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관해 언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입니다.

구체적 사실이 적시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접촉금지’라는 어휘는 통상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이 사건 의결 등을 통해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이 반 학생들이나 부모에게 알려졌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고요.

"이러한 사정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상태 메시지를 통해 특정 학교폭력 사건이나 그 사건으로 받은 조치에 대해 기재함으로써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구체적인 사실을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의견입니다.

▲앵커=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려고 한 게 아니라 초등학생 학부모로서 학교폭력 자체에 대한 의견 표현과 환기를 촉구한 것이다, 이렇게 본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씨가 자신의 개인 SNS 계정 프로필에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라는 글과 주먹 모양의 이모티콘을 설정한 것만으로는 박군을 특정 하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제처 설명입니다.

▲앵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은 다 까먹었는지, 이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일인지부터 좀 돌아봤으면 좋겠네요.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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