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판결 '판사에 재판개입 권한 없어 직권남용죄 성립 안돼' 전제 뒤집어
"헌재 내부정보 수집 공모,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는 직권남용" 판단

 

이민걸(왼쪽)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률방송 자료사진
이민걸(왼쪽)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률방송 자료사진

[법률방송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이른바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전직 판사 2명에게 처음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60·사법연수원 17기)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59·18기)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방창현(48·28기)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와 심상철(64·12기) 전 서울고법원장(현 수원지법 성남지원 원로법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전현직 법관 14명을 기소했고, 현재까지 10명이 1심 판결을 받았다. 그간 6차례 열린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이 전 기조실장 등 2명이 처음이다. 유해용 변호사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는 이날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특정 사건 핵심영역을 지적하는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재판 개입을 시도할 사법행정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사법농단 의혹 판결의 '판사들에게 재판 개입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권한을 남용해 권고 이상의 행위를 하게 하면 해당 판사는 인사권 등도 염두에 두기 마련이고, 권고를 제쳐두고 사무를 수행하는 게 어려워 사실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2015년 2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헌법재판소 견제를 위해 파견 법관을 활용해 헌재의 내부 정보 등을 수집한 직무 집행을 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전 상임위원이 문건들을 파견 법관에게 요청한 것은 직권 행사이며, 임 전 차장의 파견 법관에 대한 요청은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이 전 상임위원은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행위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이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 등을 수집하는 데 공모했다는 판단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기조실장이 2016년 사법부 정책 추진 협조를 얻기 위해 당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선숙·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등의 보석 허가 여부 및 재판부의 유·무죄 심증을 알려달라며 부탁한 혐의도 직권남용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은 직권에서 벗어나 이같은 위법 부당한 지시를 해 당시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이 2015년 7월 사법정책에 반대하고 법관 인사제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소모임 활동을 저지하고 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도 직권남용 유죄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이 옛 통진당 의원 행정소송 1·2심과 상고심 재판에 개입한 혐의,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1심에 개입한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헌재를 견제하고 사법부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사건이 조기에 선고될 수 있도록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민걸 전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 대해 각각 징역 2년6개월, 방 부장판사와 심 전 법원장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당초 이들 4명의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지난달 18일, 지난 11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변론 재개 신청과 재판부의 기록 검토 및 판결서 작성을 위한 추가 시간 필요 등을 이유로 2차례 연기된 끝에 이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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