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를 이웃집 구씨라 부르다... 롯데월드몰 그라피티 작품 훼손과 동가지구(東家之丘)
공자를 이웃집 구씨라 부르다... 롯데월드몰 그라피티 작품 훼손과 동가지구(東家之丘)
  • 유재광 기자
  • 승인 2021.03.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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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인 줄 알고 물감 뿌려"... 경찰, 고의 없다고 보고 사건 종결

[법률방송뉴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설치된 세계적인 그라피티 작가의 작품에 물감을 뿌려 훼손한 20대 남녀가 온라인에서 상당한 논란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옆집에 사는 공자를 알아보지 못하다. 오늘 ‘뉴스 사자성어’는 동가지구(東家之丘) 얘기해 보겠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후 1시 40분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서 진행 중인 ‘STREET NOISE’(거리의 소음)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전시된 존원(JohnOne·58)의 작품 ‘Untitled'(무제)에 20대 연인이 청록색 물감을 칠했습니다.

존원은 자유로운 표현과 화려한 색감으로 ‘거리의 낙서’인 그라피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롤스로이스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현대미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엔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수여받은 바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지난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관객과 미디어 앞에서 직접 2시간에 걸쳐 그린 작품으로 가로 700cm, 세로 240cm 크기의 대형 작품입니다.

굳이 작품 가격을 따지자면 5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세계적 작가의 작품에 20대 연인이 붓에 청록색 물감을 묻혀 뿌려서 가로 80cm, 세로 150cm에 이르는 ‘붓자국’을 남긴 겁니다.

전시회 주최 측은 당시 존원이 사용한 물감과 붓, 신발 등 각종 퍼포먼스 장비들도 함께 전시 한 건데 이 20대 남녀는 이런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물감을 뿌렸습니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 전시장엔 관리자가 없었고 30분 뒤 작품이 훼손된 걸 발견한 전시장 측에서 CCTV를 확인해 20대 연인을 특정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전시장 측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관련 안내문을 붙여 놓았는데 작품 소품으로 함께 전시해 놓은 물감으로 관람객이 작품을 훼손해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형사적으로 문제를 삼자면 우선 작품의 가치를 훼손한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품이 훼손됨으로서 전시를 못하게 되면 업무방해 혐의도 추가될 수 있고, 고의로 작품을 훼손하기 위해 전시회에 들어갔다면 주거침입죄가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 붓질을 한 20대 남녀는 작품 훼손 경위에 대해 “벽에 낙서가 돼 있고 페인트가 있어서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시장 측은 이 20대 남녀에게 작품 훼손의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혔고, 경찰도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재물손괴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는 아니지만 과실범은 처벌할 수 없고 훼손을 하겠다는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보고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인데,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손해배상 민사책임은 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전시장 측은 “존원 작가에게 ‘그라피티 작품인 만큼 이해를 바란다’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고,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5억원을 호가하는 세계적 작가의 작품에 대해 “낙서인 줄 알았다”며 덩달아 물감을 뿌려대며 ‘낙서’를 한 20대 연인들.

춘추시대 노나라 곡부 출신으로 중국이 배출한 최고의 사상가인 공자의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입니다.

관련해서 공자가어(孔子家語)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병원전'에 ‘동가지구’(東家之丘)라는 말이 나옵니다.

직역하면 ‘동쪽 이웃집에 사는 구씨’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구’는 공자를 말합니다.

바로 이웃집에 중국 최고의 성인(聖人)이 사는 줄도 모르고 공자를 ‘우리집 오른쪽 집에 사는 구씨’라고 부른 데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동가지구는 사람이나 물건의 진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 물건이나 사람 보는 눈이 없음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됐습니다.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낙서’로 생각하고 같이 낙서한 20대 연인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듭니다. 영화 ‘매트릭스’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hyper reality)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라 같은 개념들도 덩달아 유행하며 예술과 미디어, 광고 등 사회현상 전반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해당 개념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원본을 뛰어넘은 사본, 실재를 압도하는 이미지 등 여러 개념으로 차용되는데, 진품과 가품의 경계가 흐려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단면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종종 이용됩니다.

어떤 이의 눈엔 ‘낙서’로 보이는 것을 무엇이 ‘작품’으로 만드는 걸까요. 단순한 낙서와 ‘예술작품’의 경계와 기준은 무엇일까요. 왜 어떤 그림은 수십억, 수백억을 호가하는 걸까요. 무엇이 그런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이번 사건 20대 남녀는 존원 작품의 ‘가치’를 훼손한 걸까요, 본질적으론 아무 차이가 없는 걸까요, 아니면 어떻게 보면 일종의 행위예술이라는 작품의 특성에 ‘스토리’를 더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여러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악의나 고의는 없었던 것 같으니 형사적으로든 민사적으로든 잘 마무리되길 바라겠습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유재광 기자 jaegoang-yu@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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