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첫 공판 이후 두 번째로 법정에서 직접 입장 밝혀... "사건 본질 정확히 판단해 주길"
"중계방송 하듯 정보 왜곡... 판사들이 직무수행 과정에 범행·범죄 저질렀다는 생각 갖게 만들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서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불어왔다"고 작심 발언을 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공판을 열었다.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담당 재판부 3명이 전원 교체된 이후 열린 첫 재판이다.

재판 도중 발언 기회를 얻은 양 전 대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불어왔다"며 "자칫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하는 게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100차례 넘게 재판에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서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날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 2019년 5월 29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은 모든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같은 이야기"라고 말한 이후 직접적인 발언은 삼가해 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어 "얼마 전 검찰 고위간부가 모종의 혐의로 수사를 받자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구하며 '수사 상황이 시시각각 유출되고 수사관계인에 의해 수사 결론이 계속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고 언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말한 검찰 고위간부는 한동훈 검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검사장은 지난 2019년 1월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 팀장(3차장검사)이었다. 한 검사장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 연루 의혹을 받던 지난해 7월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고, 수사심의위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러면서 자신이 받는 '사법농단' 혐의와 한 검사장 사건을 빗댔다. "이 사건(사법농단)은 실시간으로 중계방송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수사 상황이 쉴새없이 보도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왜곡됐다"면서 "일반 사회에서는 마치 (판사들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행·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새로운 재판부가 그런 상황을 혜량해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이 사건의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약 1시간에 걸쳐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최근 다른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가 인정된 부분에 대해 혐의를 부인했다. 종전의 무죄 주장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일부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한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가 인정된 혐의는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들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하도록 한 혐의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를 상대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취소하도록 강요한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 등 3개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한 혐의에 대해 "(파견 법관들에게) 지시한 것은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라며 또 "(법관들에게) 파악하도록 했다는 정보들이 과연 전달 자체가 위법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며 "이 때문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인 이규진 판사를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에 는 "아무리 대법원장이라도 법관의 재판 심리에 개입할 수 없고, 법관은 개입 행위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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