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영화 ‘부당거래’는 검찰과 경찰의 대립을 그린 류승완 감독의 수작으로, 많은 분들이 보셨거나 그 내용을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이 영화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명대사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강력계 팀장인 최철기(황정민 분)는 유착관계에 있던 해동건설 대표 장석구(유해진 분)에게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배우’를 섭외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부탁을 하게 되었는데, 장석구가 이를 빌미로 점증된 무리한 요구를 하자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를 살해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철기는 이 과정에서 충실한 동료인 마대호(마동석 분)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이를 알게 된 분노한 팀원들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최철기의 일련의 행보와 살아온 궤적의 결과물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최철기 인생 최후의 선택이 이루어진 기로(岐路)에서는 저도 이런저런 단상(斷想)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석구를) 죽이지 않으면 경찰직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 시달리게 될 것이며, 죽이는 경우 발각되면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선택의 상황 그 자체로 이미 무간(無間) 지옥인 것이, 우리 조합장님들이 겪고 있는 고초와 얼핏 그 양상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추진위원장 또는 조합장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24조 규정에 따라 정보를 공개할 의무와, 조합원의 성명과 결부되어  주소와 전화번호가 같이 공개되는 경우 사생활의 영역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를 보호해야 하는 서로 상충되는 의무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인정보처리자로서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 제18조 및 제71조에 따라 처벌을 받을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과는 별도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공개된 것에 대하여 조합원들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무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공개청구가 이루어진 조합원명부를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제공한 사안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관되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기조를 보이고 있었던 바(의정부지방법원 2013. 11. 7. 선고 2013노1802판결, 서울동부지방법원 2017. 5. 25. 선고 2016노1777판결 등), 비대위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조합에서 이와 같은 정보공개청구에 이은 고발은 전가의 보도와 같이 이용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즉, 민감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조합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공개하지 않으면 고발을 당하게 되는 너무나도 골치아픈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이와 같은 고민은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최근 대법원이 조합원의 전화번호가 도시정비법 제124조 제4항에 따른 열람·복사의 대상에 해당함을 명시적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21. 2. 10. 선고 2019도18700 판결). 다만 이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 개인정보, 특히 휴대전화 번호 공개로 인하여 성난 조합원 민심을 달래주거나 조합원명부를 함부로 유출한 인원을 자동으로 처벌해 주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조합장님들은 고행바다에 몸을 담그고 계신다 할 것이지만, 선택의 고통보다는 수습의 고통이 조금 더 낫다는 것,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아주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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