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면제 '예외' 인정하면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도 배상책임 발생"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개인 못하고 국가만 가능... 우리 정부 대응 주목"

▲유재광 앵커= '윤수경 변호사의 이슈 속 법과 생활' 오늘(23일)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1, 2차 소송 엇갈린 판결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제죠, 서울중앙지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2차 소송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렸죠.

▲윤수경 변호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 민성철 부장판사는 그저께인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국제법상의 '국가면제'에 따라 일본국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허용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각하는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내리는 결정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일본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성관계 강요는 공권력 행사로서 일본의 (위법한) 주권적 행위”라며 “(이 사건에서도) 국가면제를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또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법원 판례는 물론, 국제 사회의 일반적 흐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출석했으나 판결 중간 법정을 나왔습니다. 판결 후 이 할머니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법원청사를 떠났습니다.

▲앵커= 국가 면제가 뭔가요, 그런데. 

▲윤수경 변호사= 이번 재판부는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 전문과 제6조 제1항이 정한 국제법 존중주의와 국제평화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침해되는 사익과 증진되는 공익 사이의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는데요. 주권면제로도 불리는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입니다.

주권국가는 자신의 주권행위로 인해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국가 간 평등 원칙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므로 외교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입니다. 일본은 이 원칙을 이유로 이번 사건에 대응하라는 우리 법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지난 1월 1차 소송에선 서울중앙지법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잖아요.

▲윤수경 변호사= 네, 이번 판결은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다른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유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당시 부장판사 김정곤)가 "반인륜적 범죄는 국가면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당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던 재판부는 승소 판결의 이유로 '인권'을 들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했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같은 사안인데 1차는 승소 2차는 각하, 180도 다른 판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윤수경 변호사= 앞서 지난 1월 1차 소송에선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선 국가 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또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1명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2차 소송에선 1차 소송과 다르게 국가면제가 적용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 현 시점의 국제규범상으로는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앵커= 같은 사안인데 이번 각하 판결의 근거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어떤 건가요.

▲윤수경 변호사= 두 판결은 국가면제에 대한 판단을 놓고 상충됩니다. 국가면제를 적용하면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의 주권 행위를 재판할 수 없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민사15부의 판결은 위안부 피해의 불법성과는 관계없이 국제법상 국가면제에 따라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게 요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 정부의 강제노역 사건과 관련해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독일 정부의 주권적 행위는 이탈리아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며 국가면제 쪽에 손을 들어준 국제 판례를 따른 취지입니다.

"한 국가의 공권력 행사 등 주권적 행위에 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면서 "당시 ICJ 다수 의견의 취지도 손해배상 문제는 개별적인 소송이 아니라 관련 국가 간의 일괄 협정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차 소송 재판부는 "무력분쟁 하의 국가 행위는 자국의 이익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군대 등 무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타국 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제사법재판소 판례 등 국제관습법을 한국 법원이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도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양국 간 조약과 합의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주진열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 법원이 국가면제에 예외를 만든다면, 가령 국군이 과거 베트남전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데 대해 베트남 법원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면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앵커= 각하 결정을 받은 이용수 할머니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겠다는 입장인 거죠.

▲윤수경 변호사= 판결 직후 이 할머니는 "너무 황당하다. 결과가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ICJ에 최후의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무엇보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위안부 제도가 국제법 위반이었고, 따라서 일본이 범죄를 인정하고 공식 사죄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현지시간으로 22일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옹호 학생회가 하버드대 아시아법학생회(HALS),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학생회(KAHLS) 등과 공동 주최한 '일본에 책임 묻기: ICJ를 통한 위안부 생존자 정의 추구' 온라인 토론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토론회에는 위안부 피해자 인권단체인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의 김현정 대표가 참석해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 필요성과 이유를 설명한 뒤 "일본이 문제 해결을 위해 ICJ로 가서 어떤 결과든 승복하기로 결정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앵커= 이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수가 있는 건가요, 어떤 건가요.

▲윤수경 변호사=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에 대해서 한 국제법 전문가는 "ICJ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제소할 수 있는데 우리 정부가 이 할머니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렇게 할지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ICJ 재판관 출신인 브루노 시마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ICJ에 회부하려면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이 사법 관할권에 대한 특별 합의를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설령 정부가 ICJ에 제소하더라도 패소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앵커= 전망이 상당히 부정적인데, 가게 되면 핵심 쟁점은 어떻게 될까요.

▲윤수경 변호사= 브루노 시마 교수는 "ICJ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이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일본 측의 주장이 맞는지부터 중점적으로 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한국 정부는 1965년과 2015년 합의가 일종의 포기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ICJ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반면 일본으로서는 '평판 손상'만 감수하면 국제법상 과거 한일 합의들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앵커= 역시 부정적인 전망인데 1, 2차 소송 엇갈린 판결, 개인적으론 어떻게 보시나요.

▲윤수경 변호사= 이번 재판부는 국가면제론 뿐만 아니라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1차 소송의 재판부와는 다른 판단을 내놨습니다. 이번 재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1차 소송 재판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법적 배상이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등 내용과 절차 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같은 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만큼 한일 위안부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국제법적 관점에서의 국가면제론 적용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앵커= 2차 소송 각하 결정에 대해서 항소한다고 하니까 일단 우리 법원 판단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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