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변의 국제법 이야기] 김익태 미국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미국 형사법원 국선전담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원,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국법자문사입니다. 복잡한 국제 법적 분쟁(국제 형사, 민사, 가사 등)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을 실무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사주팔자를 그렇게 보면서도 자기 맘대로 사는 게 인생일진데,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다 겪게 되는 팔자인가 보다. 하여, 노(老) 시인도 이 진리를 알고서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서 겪을 인간사의 어려움이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할 계약을 해서 겪어야 할 법적인 어려움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법률방송뉴스에 게재한 '국제거래 영문계약서 검토' 시리즈 → 바로가기 에서 소개한 바 있다). 바로 분쟁이다.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진다. 국내소송이라면 몰라도, 국제소송이라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대기업도 아닌 우리 회사에 혹은 나 개인에게 미국에서 소장이 날아온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모든 소송은 원고가 제출한 소장(Complaint)이 피고에게 송달(Service)될 때 시작된다. 요즘은 송달 절차도 간소화되어 때로는 이메일 송달도 가능하다. 소장을 받은 후 30일 이내에 답장을 하지 않고, 출두(Summons)하지 않으면, 궐석 판결(Default Judgment)이 내려진다는 경고가 눈에 들어온다. 평시에도 미국에 가서 출두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데, 코로나 시대에는 아예 비현실적이다. 미국 현지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난감하다. 대기업이야 사내변호사가 있으니, 그들을 통하여 대응하면 될 일이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 사건의 사내변호사 역할을 해 줄 국내에 있는 미국 변호사를 통해서 미국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든지, 직접 미국 현지의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 두번째 경우를 상정해 보자.

미국은 주마다 주 법원이 있기 때문에, 주 법원에 제소된 사건은 그 주의 변호사가 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주 법원에 제소된 사건이라면 일리노이주 자격증이 있는 변호사만 대리할 수 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법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다. 미국의 주 법원은 몇 개의 시를 포함하는 카운티(county)별로 소재하므로, 법원이 소속된 카운티 지역의 변호사를 선임하면 무난하다.

예를 들어, 시카고가 속한 쿡 카운티 법원이라면, 인터넷에서 'cook county'를 치고 변호사를 가리키는 'attorney'('state attorney'는 '검사'이니 유의해야 한다)나 'lawyer'를 치면 된다. 그러면, 수많은 변호사들이 나온다. 너무 많으니 필터링을 원하면, 국제소송(international litigation)이나 상법소송(business litigation/commercial litigation) 등을 추가하여 좀더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들로 압축해 보자. 그래도 여전히 많은 변호사들이 노출되어 차별성 부각이 쉽지 않다. 결국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로펌의 규모와 전문분야 (practice area) 등을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큰 로펌(여기서는 편의상 50인 이상을 큰 로펌으로 구분해 보자)은 법률비용이 고액일 수 있고 너무 작은 로펌(10인 이하)이나 개인 변호사들은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10인에서 50인 사이의 중형로펌이 현실적인 대안인데, 거기에 한국계 변호사가 있다면 플러스다.

관심이 가는 로펌을 몇 군데 선정한 후, 직접 연락을 해보자. 자신을 소개하고, 미국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대한 수임 조건 (Terms of Retainer)을 문의한다. 소송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하거나, 소장을 첨부해도 좋다. 이메일 문의 시, 로펌 이메일과 대표급의 변호사 개인 이메일로 동시에 보내면 스팸 처리를 예방할 수 있다.

내 사건에 관심이 있는 로펌이라면, 수임 조건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미국의 로펌은 일하는 시간만큼 비용을 청구하는 타임 차지(time charge) 방식을 택한다. 우리처럼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나누지 않고, 일한 만큼 청구(billing)한다. 일견 합리적이지만, 이런 방식이 생소한 우리에게는 불안할 수 있다. 과다 청구의 가능성이나 청구액의 상한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이 있다면, 사전에 사건 규모를 고려하여 예상되는 법률비용의 범위에 대해서 문의해야 하며, 상한선(Cap)을 정할 수도 있다. 상한선의 경우, 내가 원고라면 상한선을 책정하고 승소 후 성공보수(contingency fee)를 책정하여 한국식으로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으나, 내가 피고일 경우에는 승소하더라도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한선을 두기는 어렵다.

최종적으로 수임을 결정하면, 다음 일은 변호사가 요청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장에서 기술한 사실관계(Facts)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과 많은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영어가 자신이 없다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이럴 경우에는 필히, 한국어가 가능한 한국계 변호사가 있는 로펌을 찾아야 한다. 많지는 않으나 대도시에는 한국계 변호사들이 상당수 있으니, 찾게 된다면 진행이 수월해진다.

소장에 대한 답변서(Answer)를 제출하기 이전에 제일 먼저 고려할 점이 있다. 사건을 주 법원에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연방법원으로 이송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주 카운티 법원의 경우, 그 지역에 따라서 약간의 특성이 있다. 백인중심지역 시골 카운티의 회사가 자기 지역 카운티에서 한국의 회사를 소송했을 때, 카운티 법원의 판사와 배심원들이 얼마나 공정할 지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이 연방법원으로 이송될 수는 없으나, 국적이 다른 당사자들간의 사건은 이송이 가능하니, 가급적 연방법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좋다. 미연방 소속의 연방법원은 각 주마다 몇 개씩 지역별로 위치하는데, 주로 대도시에 위치해 있다. 얼마전 내가 대리하는 한국의 한 회사가 텍사스주의 작은 카운티에서 제소되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답변서 제출 전 달라스에 있는 연방법원으로 이송한 일이었고 사건은 현재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답변을 하기 전, 종종 진행하는 절차는 각하 청구(Motion to Dismiss)이다. 사건 자체가 그 형식에 하자가 있으니,  옳고 그름에 대한 다툼(Merits)을 진행할 것도 없이 사건을 종결시켜 달라는 요청이다. 너무 황당한 사건이거나, 소장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여 소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울 경우 가끔 각하가 되기도 하나, 쉽지는 않다. 또한 소장에 하자가 있더라도 보수를 하여 수정소장(Amended Complaint)을 제출하기도 하니, 이 과정에서 소가 쉽게 끝나길 기대하기는 다소 무리이기는 하나, 유용한 절차이다. 각하 청구가 거절(Deny)되었다면,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소송의 절차가 시작된다.

살면서 소송에 휘말리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으나, 가야 할 길이라면 힘들더라도 가야 할 수밖에 없다. 본 칼럼이 그 여정의 지도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통해서 이후의 절차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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