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출석 삼성증권 전 팀장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모호한 답변

[법률방송뉴스] ‘삼성그룹 불법합병’ 논란 관련 부정거래와 시세조정,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3차 공판에서 이른바 '프로젝트G' 보고서 작성자가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이리떼를 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오늘 뉴스 사자성어는 ‘낭패불감’(狼狽不堪) 얘기해 보겠습니다.

'프로젝트G' 보고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와 관련된 문건입니다.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 승계 계획을 사전에 마련했고, 이런 계획에 따라 이 부회장에 유리하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이 과정에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매입을 통한 시세조정 등 회사 차원의 불법행위가 있었고,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오늘 이 부회장에 대한 3차 공판에는 ‘프로젝트G’를 포함해 다수의 승계문건 작성에 관여한 삼성증권 전 팀장 한모씨가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문건 작성 경위나 취지 등을 묻는 검찰 신문에 한씨는 상당부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먼저 2014년 7월 작성한 ‘그룹 지배구조 이슈’ 문건 관련 검찰이 “고 이건희 회장이 같은 해 5월 쓰러진 것을 고려해 2012년 작성했던 ‘프로젝트G’를 업데이트 한 것이 맞나”라고 묻자 한씨는 “정확한 상황을 기억하지 못 한다”면서도 “요청에 따라 문건을 작성했던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검찰이 이에 “요청에 따라 문건을 작성했다고 대답했는데 요청은 미래전략실이 했다는 뜻인가”라고 재차 묻자 한씨는 다시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지만”이라고 자락을 깔면서 “이런 것을 검토할 때는 미전실과 대응했다”고 답변했습니다.

검찰은 한씨가 일단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라는 식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자 “본인이 했던 업무이고 경험한 일인데 기억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잘 모른다는 취지로 얘기한다”며 “잘 기억해서 답변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이에 한씨는 "최대한 정확히 말씀드리려 노력하고 있고 오래전 일인데다 이런 검토가 너무 많았다“며 ”양해해 달라“고 응수했습니다.

한씨는 그러면서 “프로젝트G 보고서에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완료 일정까지 정했다. 법정 상속과 금산분리 규제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계획했던 것 아닌가”라는 검찰 신문에는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기억 난다, 안 난다’도 아니고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답변.

검찰 신문에 대한 한씨의 답변을 접하니 웬만한 정치인 찜 쪄 먹는 노회함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흔히 ‘낭패를 보다, 낭패를 만나다’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 낭(狼)과 패(狽)는 모두 ‘이리’를 뜻하는 한자로, 이리떼를 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말합니다. 

3세기 중후반 서진 시기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陳情表)라는 글에 이 ’낭패(狼狽) 표현이 나옵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이밀은 촉한(蜀漢)의 관리가 되었는데, 촉한이 멸망한 뒤 진무제(秦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이밀을 태자세마(太子洗馬)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90 넘은 조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벼슬을 사양하며 올린 글이 ‘진정표’입니다.   

조정에 나아가는 뜻을 밝히는 글 가운데 삼국지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제일로 친다면, 벼슬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 글 가운데엔 이밀의 진정표를 제일로 칠 정도로 명문(名文)입니다. 

신 밀은 금년 마흔 넷이고 조모 유씨는 아흔 여섯이옵니다. 이는 신이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를 봉양할 날은 짧은 것입니다.  

구구절절 늙은 조모에 대한 애틋한 효심을 나타낸 이밀은 신지진퇴(臣之進退) 실위낭패(實爲狼狽), ‘신이 조정에 나아가야 하는지 물러나야 하는지, 실로 처한 처지가 낭패이옵니다’라고 읍소합니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나 상황에 처했음을 뜻하는 ‘낭패불감’(狼狽不堪)입니다.  

다시 이재용 부회장 재판 얘기로 돌아오면 한모씨라는 삼성증권 전 팀장 입장에선 비록 지금 삼성을 그만둔 상태라 해도 여러 면들을 감안하면 ‘이게 이거다, 저게 저거다’라고 속 시원하게 말 할 처지가 못 될 거라 생각됩니다.

승계 관련 보고서를 쓴 일은 있고, 검찰은 추궁하고, 이것저것 뒷일을 생각하면 액면 그대로 말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애매하고도 모호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낭패불감의 처지라 이해됩니다.

다른 증인들도 처지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더불어 이 재판과는 별개로 이미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 받고 복역 중인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솔솔 풍겨 나오는데, ‘원칙’과 ‘실리’ 사이 사면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 나아갈지 말지, 사면을 내릴지 말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지켜볼 대목 아닌가 합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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