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규칙 '고발인 등 기초조사 후 입건 여부 결정' 명시... "절차 하자" 비판

[법률방송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어제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하면서 여러 논란과 해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수처가 고발인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입건해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지키지 않은 절차 위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왕성민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공수처가 어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직권남용 혐의 고발 사건 2건에 대해 각각 '공 제7호'와 '공 제8호'의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정식 입건했습니다. 

사건은 최석규 부장검사가 지휘하는 수사3부에 배당됐습니다. 

윤 전 총장과 함께 고발된 조남관 대검 차장과 이두봉 대전지검장, 김유철 원주지청장도 피고발인 신분으로 함께 입건됐습니다. 

윤 총장의 혐의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수사 의혹입니다.

2019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옵티머스 사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방치했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혐의를 받는 검사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입니다.     

앞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의 김한메 공동대표는 지난 2월과 3월 윤 전 총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을 공수처에 접수했습니다.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공동대표] 
"(공수처가) 제대로 의지를 가지고 수사 주체로서 압수수색, 강제수사 당연히 해야 되고 그런 것들을 제대로 하는 만큼 결과는 나온다, 수사 의지를 잘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옵티머스 사건은 사건 자체가 부장(검사) 전결이라 아예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보고 받지도 않은 사안에 대해 직권남용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취지의 반박입니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사건 수사 방해 의혹에 대해서도 윤 전 총장 측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당사자인 윤 전 총장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가운데 정치권 반응은 크게 엇갈립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선 공수처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며 "야권 탄압"이라는 격앙된 반응입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드디어 현 정권의 공수처 집착증의 큰 그림이 드러났다. 이제 정권에 밉보인 인사들은 단지 친정부 단체에 의한 고발만으로 그 명운이 좌우될지 의심스럽다"고 논평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칙대로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속내가 복잡해 보입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여권 쪽으로부터 맞을수록 커져온 윤 전 총장 몸집만 더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무혐의 처분이라도 나면 대선을 앞두고 날개를 달아주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김한메 사세행 공동대표가 고발인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 착수는 크게 4단계를 걸쳐 결정됩니다.

먼저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담당 직원은 ‘수사처수리 제0호’라고 수리 번호를 붙여 해당 기록을 분석조사담당검사에게 인계합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2조 1항, 제13조 1항)  

기록을 넘겨받은 분석담당검사는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소인·고발인 조사 등 기초조사를 통해 해당 사건의 수사 필요성 등을 분석·검토합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3조 2항)

그리고 분석이 끝나면 분석조사담당검사는 분석의견서를 작성해서 공수처장에게 보고합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4조 1항)    

이후 분석담당검사는 처장의 지휘·감독에 따라 직접수사 필요가 있는 경우 사건을 입건하고, 범죄혐의가 없는 경우 등엔 불입건 결정을 합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4조 3항)  

결국 공수처장이 최종적으로 입건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인데, 이렇게 입건 결정이 나오면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6조 ‘공직범죄사건의 등록’ 조항에 따라 ‘공 제0호’라는 사건번호가 붙게 됩니다.

윤 전 총장 사건도 이런 과정을 거쳐 '공 제7호'와 '공 제8호' 사건번호가 각각 부여된 겁니다. 

문제는 윤 전 총장 사건 고발장을 접수한 김한메 사세행 공동대표가 공수처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공동대표] 
"아니 어제 이제 통보를 받은 거고. (아직 차후에도 예정이나 이런건) 공수처에서 언제 출석해라, 이런 건 아직 오지 않았어요 (예전에도 안 받았고요) 이거는 받은 적이 없어요."  

앞서 본 것처럼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13조는 "분석조사담당검사는 수사처의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소인·고발인 등 기초조사를 통하여 해당 사건의 수사 필요성 등을 분석·검토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발인 조사는 패스하고 윤 전 총장 사건 입건과 정식 수사 착수를 결정한 것입니다.

조문이 '고소인·고발인 등 기초조사'라고 '등'이 들어가 있어 다른 방식으로 기초조사를 마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에 대한 수사를 결정하면서 고발인 조사도 하지 않은 점은 안 그래도 정치적 논란과 공방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절차적 하자'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사건을 입건한 데는 고발인 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당 부분 범죄혐의를 파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 오기 전에 결론적으로 '혐의 없음' 결정 수순으로 문제를 털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정반대 해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법조계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일단 공수처 수사 여력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공수처 검사는 현재 13명뿐인데 이 중 6명은 연수를 받고 있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학의 전 차관, 이규원 검사 사건 등 이미 붙잡고 있는 사건들도 적지 않은데 화력 집중이 가능하겠냐는 겁니다.

여기에 윤 전 총장이 받고 있는 직권남용은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범죄입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대통령 정무수석에 대한 판결(2019노1602)에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공무원이 그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어야 하고 ② 그 직무권한을 남용하여야 하며 ③ 그 결과,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④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하고 ⑤ 고의가 있어야 한다"는 엄격한 요건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공수처는 당장 윤 전 총장이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고발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가 사건을 정식으로 입건했다면 그만큼 수사 필요성이나 증거 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률방송 왕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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