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전문가들 "법원 편익 아닌 국민 위해 작동해야"

[법률방송뉴스] 누군가에게는 큰 돈 일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푼 돈 일 수 있는 돈의 가치.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또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사소송에서는 이른바 ‘소액사건’이라는 명목 하에 소송비용 3천만원 이하 재판의 경우엔 판결문에 판결 사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 3천만원을 과연 ‘소액’이라고 볼 수 있는지, 국민의 ‘알 권리’보다 과연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더 중요한 것인지 하는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 7월 법률방송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소액사건심판법 일부개정안을 소개하며 관련한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했는데요. 해당 법안을 발의한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엔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소액사건심판법 개선 방향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박아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이 지난 7월 말 대표발의한 소액사건심판법 일부개정안입니다.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소액사건도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한다는 게 최기상 의원안의 주요 골자입니다.

현행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르면 소송가액이 3천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민사소송을 이른바 ‘소액사건’의 경우 판결서에 판결 이유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소액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일선에선 ‘깜깜이 판결문’으로 인해 소송 당사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소송에서 진 이유조차 알 길이 없어 사법 불신을 키운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돼 왔습니다.

최기상 의원안은 이에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 ▲피고가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모두 자백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하고 따로 항변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 ▲당사자가 변론에서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을 명백히 다투지 아니하는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소액사건도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소송 당사자 간 다툼의 여지가 없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액사건도 원칙적으로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해 판결 내용과 사유, 취지를 명확히 하자는 겁니다. 

[최기상 의원 / 더불어민주당] 
“부득이 항소를 하는 입장에서도 어떤 이유에서 항소를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또 당연히 항소심 재판부에서도 1심에서 왜 이런 판단을 했는지 알면 항소심에서 심리를 집중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즉 당사자에게도 재판부에게도 모두 도움이...”

최기상 의원은 해당 법안이 실제 법제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어제(31일) ‘소액사건 심판제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시민단체, 법조계, 언론 등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소액사건심판제도의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매년 법제처에서 발행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1심 민사본안 사건은 매해 평균 98만1천296건입니다. 이중 소송가액 3천만원 이하로 소액사건으로 분류된 사건은 71만691건, 전체의 72.4%를 차지합니다.

법원에서 ‘소액사건’으로 치부돼 제대로 된 판결문조차 받지 못하는 사건이 사실 국민들의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이라는 얘기입니다.

[김숙희 변호사 /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 ]
“소액의 개념도 저는 조금 이해할 순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 소액인데, 3천만원이 소액인지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거든요. 소액이라는 이유만으로 알권리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은 아닌지...”

전문가들은 특히 소액사건이 항소로 이어지는 비율에 주목했습니다. 소액사건으로 분류된 71만691건 중 처리된 사건은 70만6천713건인데, 처리 건수 대비 항소율은 2.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소액사건으로 분류돼 판결 이유조차 받아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숙희 변호사 /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 ]
“당사자가 판결에 불복을 하려면 내가 왜 2심에서 졌는지, 왜 졌는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왜 졌는지를 알아보려면 판결 이유를 읽어봐야 하는데 판결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왜 패소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소액사건심판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당초 취지대로 ‘국민’을 위한 제도가 돼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현행 소액사건심판법은 실제 ‘법원’의 편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정규 변호사 / 원곡 법률사무소 ]
“소액사건심판법에 대해 시민들이 기대하는 바가 굉장히 크죠. 글로 적지 않고 구술로도 소를 제기할 수 있고, 야간이나 주말에도 법정이 열리고, 이런 부분들은 사실상 전혀 작동되지 않고 상고 또는 재항고 제약, 판결 이유 기재 생략 등을 통해서 오히려 본래 법 취지와는 다르게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소액사건심판법 개선에서 나아가 집단소송제 등 실제 서민들의 ‘재판 받을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타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습니다.  

[이대순 변호사 /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대표]  
“소액사건 심판법도 심판법이지만 집단소송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을 서포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이 정비가 굉장히 시급합니다. 이것이 안 된 상태에서 개인의 일이 돼 버리면 ‘나홀로 소송’이라는 게 말이 나홀로 소송이지...”

다만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은 법조계와 정치권의 공감대 형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에 대해 판결 이유를 기재하긴 어렵다”는 사법부 반발에 직면해 있는 실정입니다.이에 대해 최정규 변호사는 “법원의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합니다.

[최정규 변호사 / 원곡 법률사무소 ]
“기본적으로 법원의 인식이 그냥 ‘우리도 지금 너무 사건이 많아서 어쩔 수 없어’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인식을 통해서 사무 분담표 같은 경우에도 적어도 소액단독 판사를 이제 안양지원 같은 경우에는 2명만 배치를 했는데 1~2명을 더 배치하거나...” 

현재 최기상 의원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인데 사법현실을 뚫고 21대 국회에서 실제 법제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박아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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