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만든 작품의 권리문제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작년 8월 하순, ‘비람풍’이라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 소설가가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됐다. 정확히는 ‘소설감독’이라는 직함의 자연인 김태연 작가가 AI 글쓰기 프로그램 비람풍을 진두지휘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소설의 서사 구조를 비롯한 주제, 인물과 성격 등 전체적인 구상은 김태연 작가가 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필력’을 발휘해 실제 집필을 한 것은 AI 소설가 비람풍이라는 게 김 작가와 출판사의 설명이다.

대중이 ‘생각하는 AI’의 존재를 비로소 피부로 느낀 첫 사건은 아마도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일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로 승리했다. 창조성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강렬한 기억을 남긴 하나의 사건이었다. 

불과 2년 뒤 AI는 인간 창조성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예술 분야에서도 이름을 날린다. 2018년 10월 세계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에서 AI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정확히는 3D 프린팅 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가 우리 돈으로 약 5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에 낙찰된 것이다. 같은 날 함께 경매 목록에 오른 앤디 워홀의 작품이 <에드몽 드 벨라미>의 6분의 1 가격인 8,500만 원에 팔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화가의 작품이 미술계에 몰고 온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에드몽 드 벨라미>를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작품의 저작권은 누가 갖는 것일까? AI가 그렸지만, AI는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연인이나 법인이 아닌 일개 프로그램일 뿐이다. AI는 저작자 또는 저작권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AI 화가 오비어스를 만든 프랑스의 예술 공학 프로젝트 그룹 ‘콜렉티브 오비어스’의 구성원 공학자가 공동으로 저작권을 갖는 것일까? 하지만 개발자들이 만든 것은 해당 프로그램일 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최종적인 물건인 <에드몽 드 벨라미>는 아니다. 개발자들은 AI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가질 뿐이다.

먼저 AI가 만든 작품을 과연 ‘예술’이라 할 수 있을지부터 살펴보자.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으로 개념미술이 탄생한 이래, 적지 않은 현대 예술가들이 ‘친작(親作)’을 고수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에서는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아이디어’와 ‘선택’만이 남겨진 문제다. 이런 견지에서 AI가 프린팅 한 수십, 수백 장의 그림 중 개발자들이 선택한 단 한 장의 그림인 <에드몽 드 벨라미>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14~20세기의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 15,000여 점을 학습시켜 어떤 결과물을 얻고자 한 ‘개념’과 그중 한 장을 고른 ‘미적 선택’이 있었으니 말이다. 미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미 수준 높은 비평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까지만 하자.

법률적인 문제로 돌아오자. AI가 만든 작품에 대한 권리를 누구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현행 법률은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저작권법」은 AI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저작권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도 AI의 작품에 적용할 딱 들어맞는 법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권리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새로 하는 수밖에 없다. AI의 창작물은 법률적 회색 지대에 있다.

이런 법률적인 모호함을 피하려고 AI의 창작 능력과 그로 인한 지식재산권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AI를 통한 창작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면, 이는 관련 기술의 개발을 억제·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시적인 입법 전까지는 ‘AI 기술 개발의 성과물 보호와 산업 진흥’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를 고려한 목적론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 해석에 의할 때 AI가 만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AI를 만들었거나 그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기업이 갖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는 법에서 말끔하게 정한 바가 없으니 ‘일단은 그게 좋겠다’는 차원이다. 다만 인간이 만든 고전적인 의미의 창작물과 같은 정도의 강한 보호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물론 가능하다. 이를 종합하면 ‘AI 산업에 대한 투자 유인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보호는 필요하지만, 그 정도는 인간의 창작물보다는 느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일단은 말이다.

이런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2020년 6월에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약칭 ‘AI 특위’) 1기를, 1년 후인 2021년 6월에는 2기를 출범해 AI 창작물의 제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지난 12월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등 16개 관계부처와 함께 <2020년 지식재산 보호정책 집행 연차보고서>를 발간했다. 총 230여 쪽의 이 보고서는 국가지식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다양한 국내외 연구 실적과 외국의 입법과 판결례 등을 소개하며 AI 창작과 관련한 우리 법률의 개정안을 제시한다.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국내 법제 개선 연구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 보고서도 ‘이게 정답’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다. 그러니 이쯤 우리 법원에 AI가 만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이 하나 올라오면 좋겠다. 그럼 공학자, 법조인, 철학자 등등이 모여 신나게 갑론을박할 터인데...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건을 은근히 기다리는 건 비단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 같다.        

AI 화가 ‘오비어스’의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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