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단상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오늘 인사청문회가 열린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86년 펴낸 시집 ‘접시꽃 당신’의 시작 부분입니다.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아내를 보내기까지 곁을 지키며 느꼈던 애절한 마음들을 담고 있습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문체부 장관 후보자 이전에, 국회의원 이전에, 정치인 이전에, 시인입니다.

 

이 땅의 3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오동나무 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오던

한 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충북 청원군 고두미 마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을 다녀온 느낌을 적은 ‘고두미 마을에서’ 라는 시로 1984년 도종환 시인의 등단 작품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른바 민중 시인 출신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의 서정성은 그래서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회한이 아니라세상과 이 세상에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머리칼이 빠져나가듯 생명이 빠져나가는 아내를 두고 도종환 시인은 그래서,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라고 접시꽃 당신에서 노래합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지난 2012년,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정부는 교과서에서 도종환 시인의 시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이에 국회의원이던 도종환 시인은 2012년 7월 9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자신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이 담담히 자신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하는 동안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는 ‘흔들리며 피는 꽃’ 시가 꽃처럼 떠 있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시 낭송도, 본회의장 전광판에 시가 뜬 것도 공전절후,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시를 다 낭송한 도종환 의원은 “수많은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시를 학생들이 읽어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합니다.

상식 밖의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그 하나입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오늘 인사 청문회에 앞서 인사말에서 “문화를 이념으로 재단하고 정권유지의 도구로 만들어 우리의 사고 폭을 제한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퇴색시킨 것이 지난 정부가 우리 사회에 남긴 큰 상처“라며 “장관이 된다면 문화부 직원들과 함께 지난 정부의 과오를 복기하고 철저한 쇄신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유재광 기자 jaegoang-yu@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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