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윤희창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윤희창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작년 12월 개봉하여 범지구적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만 75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마블 시네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영화는, 미스테리오의 계략에 빠진 피터 파커의 위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교묘하게 편집된 미스테리오의 피살 영상이 뉴욕 전역에 생중계되며 범인으로 특정된 피터 파커는 학교, 지역사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수사기관과 방송사의 감시를 받으며 그의 막역한 친구 MJ, 네드와 함께 MIT로부터 대학입학을 취소당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피터 파커는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지키고자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마법의 힘을 빌려 모두에게서 잊혀지기로 합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거나 소위 온라인상에 ‘박제’되어 영원한 기록으로 남아버리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잊혀질 권리’ 그 자체를 헌법상 명시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지는 아니하나,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 및 헌법 제17조에서 정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근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6헌마483 결정).

우리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사람은 자신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함부로 타인에게 공개당하지 아니할 법적 이익을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사항은, 그것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 아닌 한, 비밀로서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부당하게 공개하는 것은 불법행위로서 이로 인한 손해를 금전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법률상 도입되어 권리의 주체 및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이상, 이를 이유로 빅데이터 업체들이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탈퇴한 사용자의 정보를 보관하는 행위가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판시하여 개인정보처리자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내부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행위 자체까지 위법하다고 평가하지는 아니하고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9. 11. 선고 2013고합577 판결).

생각건대, 개인의 정보를 타인에게 부당하게 공개하였을 때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 또는 공연히 제3자에게 적시하였을 때의 위법행위로서 명예훼손 죄책과 달리 ‘잊혀질 권리’의 본질은, 위와 같은 배포 내지 유출 행위의 원천이 되는 정보 자체의 ‘삭제 또는 소멸을 구할 수 있는 권리’라 할 것인 바, 위와 같은 행위 자체를 원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로 보장할 실익이 분명한 권리라 하겠습니다.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방법을 선택한 피터 파커가, ‘잊혀질 권리’가 헌법적으로 보장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법령이 정치하게 발달한 어딘가의 또다른 평행세계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잊혀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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