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김동욱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김동욱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살균제(원료물질 : PHMG)로 인한 폐손상 등으로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상해에 걸린 사건을 영화화한 것으로서 소설 ‘균’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공기살인’은 피해자들의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즉 민사적 측면에 주목하여 진행되다가, 후반부 제조사 내부자의 전략적인 고발에 의해 관련자들의 형사처벌 국면으로 급변하게 됩니다.

‘공기살인’이라는 제목과 같이 극 중 언급된 죄책은 살인죄(형법 제250조)입니다만, 이와 달리 실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기초로 한 형사재판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즉,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죄(형법 제268조)로 기소 및 의율(擬律)되었고, 이는 피고인들의 살인죄 고의 입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검찰의 차선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은 형사법 전반에 걸친 쟁점들(공소시효, 피고인들의 예견·회피가능성 및 주의의무 위반 여부, 인과관계 등)에 대한 첨예한 공방이 이루어졌는데, 이 중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은 법조인인 필자는 물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 큰 시사점을 주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합니다.

부연하자면, 영화 ‘공기살인’에서는 1개의 제조·판매사만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다수의 제조사가 PHMG를 원료로 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였고 해당 사건의 피해자 중 다수는 두 종류 이상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바, 이에 각 제조사의 과실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쟁점(과실범의 공동정범)이 대두되었습니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문제를 가장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으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도1231 판결)’ 또는 ‘성수대교 붕괴사건(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1740 판결)’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즉 건축물 및 교량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설계, 시공, 현장감독, 사후 유지관리 등)의 주의의무가 준수되어야 하고 만일 이를 위반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관련자들의 각 과실을 공범의 형태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과실범의 공동정범’ 인정 여부에 대해, 학계의 다수는 공범이란 상호 간 행위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나아가 위와 같은 소수의 인정 선례(先例)들 역시 ① 행위자별 과실의 각 존재 및 ② “행위자 상호 공동의 목표와 의사연락의 존재”와 같은 엄격한 인정요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다수의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은 상호 ‘경쟁사’인 관계로 법원이 요구하는 ‘행위자 상호 공동목표와 의사연락’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고, 이에 변호인들 역시 그 점을 집중적으로 변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복수의 제조업자가 동일한 형태의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소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다. (중략) 복수의 제조업자는 이 사건 각 가습기살균제를 소비자들에게 공동으로 제조·판매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다소 생소한 판단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고 이로써 피고인들의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유효한 법리 및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깊이 고려하여 위와 같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이고 필자 역시 사건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핀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각에서는 본래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의사의 연락’이라 함은 가해자 상호 간 의사연락만을 말하는 것이고, 만일 소비자들이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제품을 사용할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가정적 판단을 전제로 형사처벌에 이르게 된다면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주의, 자유심증주의 등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향후 위와 같은 법원의 판단이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주요 법리로 확립될 경우, 대형 제조·판매사들은 자신들의 주의의무를 더욱 엄격하게 준수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형사법적 논의를 모두 차치한다면 재판부의 판단이 다소 가정적이고 생소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부정적으로만 치부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영화‘공기살인’이 저를 포함한 모든 관객에게 울린 경종을 되새기며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법과 판결만을 운운하는 법조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수많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분들께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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