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기조강연

[법률방송뉴스] 대한국제법학회(회장 이용호)와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정웅석)가 지난 6월 17일, 국제형사재판소(이하 ‘ICC')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김웅 국회의원은 이날 축사를 통해 “중대범죄 예방과 처벌, 그리고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ICC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2월에 발생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면서 “ICC 규정상 침략범죄의 구성요건과 관할권 행사 요건을 논하고, 범죄피해자에 대한 형사배상결정의 기본원리 등을 검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오늘의 학술대회는 매우 시의적절하며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 체제서 한국 리더십과 영향력 막강”

2009년부터 6년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ICC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2002년 7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ICC가 문을 열기까지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성립을 위한 한국 외교부 신각수 대표의 절대적 공헌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2003년 초 이 규정을 비준하자마자 송상현 교수를 지명했고, 그는 4일간의 33차에 걸친 투표 중 최초 투표에서 최고 득표를 받아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됐습니다. “이처럼 ICC 초창기부터 한국의 리더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유엔과 별도의 국제 조직인 국제형사재판소 체제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ICC는 피해자신탁기금(Trust Fund for Victims)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관할 범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보호하고 보상하며, 그들이 인간존엄성을 회복하여 다시 한 번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돕습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보통 형사법원이 응보적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ICC는 선제적으로 피해자를 위한 치유적 정의(reparative justice)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실현하는 구체적 책임을 부담하는 인류 초유의 법률적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인류 5천년 역사에 형사법원이 이처럼 관할 범죄의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없었고, 비단 평화교란자를 처벌함에 그치지 아니하고 ICC는 범죄피해자를 보호하여 자립을 돕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ICC의 현대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평화 위한 국제형사재판소

현재 국제상설재판소는 유엔 산하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해양재판소(ITLOS), 그리고 유엔 조직과 별개로 운영되는 독자적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총 3개가 있습니다. 유엔의 두 재판소는 각각 독자적으로 법원 본래의 사법운영을 하고 있으나 ICC는 그 보충성원칙 때문에 관할 사건이라도 각 회원국의 국내 사법체계에서 먼저 처리함이 원칙이고, ICC는 최후수단의 법원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송 교수는 “수사와 재판업무는 재판소가 하지만 구속영장의 집행, 증거확보, 증인보호 및 선고 결과의 집행 등은 각 국가가 나누어서 맡는 ICC의 구조와 운영상 각 회원국의 협조는 꼭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회원국의 협조는 로마규정상의 의무인데, 우리나라는 당시 법무부 황철규 검사의 노력으로 일찍부터 로마규정 이행입법을 제정하여 다른 나라에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현재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는 123개국으로, 이를 비준하지 아니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그 재판권의 범위 밖에 있다는 점은 한계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러시아 푸틴을 헤이그로 연행하여 구속 수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수년 전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북한 등에서 벌어지는 참사와 관련해서도 ICC는 이들이 비회원국인 관계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송 교수는 “(이로 인해) 국제형사정의가 신속하게 실현되기 어려운 점이 있어 형사책임문제에 관하여 새로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유엔 내외에서 국제적 형사책임추궁(international criminal accountability)의 새로운 방식을 ICC에 대한 대안으로서 토의하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북한의 인권유린을 조사하기 위하여 호주의 Michael Kirby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Commission of Inquiry(COI)가 성립한 것이 대표적인데, 이 위원회가 제출한 북한인권보고서는 세계인 모두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습니다.

송 교수는 ICC가 이러한 한계 위에서 나아갈 바를 크게 네 가지의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은 △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회원국에 대한 당사국총회의 제재 내지 조치가 강력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회부한 사태를 국제형사재판소가 수사하고 재판하는 경우 그 비용을 회부한 유엔이 부담하는 명문의 합의 필요 △무죄판결이 나거나 복역을 마치고 석방된 피고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할 경우에 대한 대책 필요 △주재국인 네덜란드와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하는 세밀한 합의 필요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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