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텔레그램 ‘박사방·n번방’에서 성착취물을 구매한 20대 남성이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수년 전 미성년 여자친구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200여개가 발견됐지만 처벌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서전교)는 성착취물 소지,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A(23)씨에게 전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A씨는 지난 2020년 2월 n번방 성착취물 파일을 구매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A씨의 클라우드를 확보했고, 2400개가 넘는 디지털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이 가운데 n번방 관련 자료는 661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A씨가 17살이던 지난 2014년 충남 아산의 한 모텔에서 동갑인 미성년자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며 촬영한 영상 206개를 발견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다른 범죄 사실이 드러났던 겁니다.

하지만 경찰은 추가 영장 없이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재판부는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음란물 제작 혐의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구별된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것은 위법한 압수수색에 해당하고 절차 위반의 정도도 중하다”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기초로 작성된 수사 보고서 등도 증거 능력이 없으며, 증거 능력이 배척되지 않은 증거들 가운데는 공소 사실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유인을 제공하는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해악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민고은 변호사(법무법인 새서울)는 “우리 형사소송법은 위법한 국가작용을 통해 수집된 증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법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예는 수사기관이 위법한 수사를 하는 것으로, 사례와 같이 불법압수수색을 통한 물증의 확보, 불법체포 후 자백을 받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최근 법원은 절차규정 위반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위 사안도 그러한 법원의 태도의 결과”라며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성이 없는 증거를 압수했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종류의 촬영물 등이지만, 피해자가 다르고 시기도 달라 당초 영장을 받은 사건과 같은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민 변호사는 “법원은 사안과 같은 경우 수색을 중단하고 새로운 영장을 받거나 임의제출을 받아야한다고 판시했다. 즉, (경찰이) 새로 영장을 받았어야 했다”면서도 “다만 실무적으로 수색을 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영장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장소를 범죄 장소로 보고 사후영장을 받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초의 영장 이외의 영장은 한 번 더 받았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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