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결말은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인공의 행보를 따라 영화에 몰입하던 중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득한 낭패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런 아버지가 없다면 낯선 땅에서 납치당한 채로 헤어날 방법 없이 끝이구나.’ 자식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이야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다르지 않을 것인데, 실제로 딸이 납치된 극한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직접 나서서 끝내 딸을 구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테이큰>은 실상 현실에는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였습니다.

새삼 <테이큰>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을 떠올리게 된 것은 <블랙의 신부>를 단숨에 정주행 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익숙한 장르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갈등을 끌고 가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의 편에서 마음을 졸이게 되는 갈등 상황이 어린이 보호구역의 과속방지턱마냥 계속해서 벌어지지만 이내 해결됩니다. 어디선가 생각지도 않은 도움의 손길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후반부에는 마치 갈등의 건수를 채우려고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꽤 묵직하고 복잡해 보이는 실타래가 등장하지만 이내 또 다른 알렉산더가 나타나 성큼 잘라버립니다.

현실의 템포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만큼 빠르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괴리는 몰입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신작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개연성을 포기하고 카타르시스 느끼게 해 주기로 한 의도적인 선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과거에 벌어진 어떤 사건의 사실관계를 근거를 제시하여 밝히고 여기에 어떠한 법률이 적용되어 일정한 효과가 발생함을 주장하게 되는 소송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템포를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대부분의 법정 드라마나 영화는 실상 희망에 가까운 것일 뿐 무정한 현실의 템포로 진행되는 재판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면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짙은 회의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 <비상선언> 역시 그저 짧은 긴장감이 연속되는 탓에 좀 싱거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는 ‘각처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빼면 대체로 순항’이라고 이 영화를 평가했습니다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없이 팍팍한 인생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의뢰받은 사건 중에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한계가 있겠지만 최대한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정교하게 다듬으려는 노력을 반복하였고, 나중에는 정말이지 최소한 일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간절한 바람과 확신에 가까운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달랐습니다. 상고기각이라는 준엄한 현실 앞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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