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민·형사 소송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벌써 14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타오르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 역시 2008년 2월 10일 밤 9시쯤부터 시작된 생중계 뉴스 영상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다. 특별히 문화재 사랑이 남달랐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숭례문 방화사건은 당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같은 해 10월 9일 대법원은 방화범 채 모 씨의 「문화재보호법」 위반 상고심에서 징역 10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그 이후, 아쉽게도 숭례문의 복원 작업에서 실망스러운 뉴스가 계속 나왔다.

■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민·형사 판결들

문화재청은 2009년 12월 공사에 참여할 장인으로 홍 모 단청장을 선정해 2012년 8월 본격적인 복원 공사에 돌입했다. 숭례문 복원은 기와, 단청 등 여러 부분의 전문가들이 작업 영역을 나누어 진행했다. 문제는 단청 복구공사에서 발생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홍 모 씨가 전통기법과 도구만을 사용하기로 한 약정을 깨고 사용이 금지된 화학접착제(아크릴 에멀전)과 화학 안료(지당)을 몰래 사용한 것이다.

홍 씨는 값싼 화학 재료를 섞어 사용하고 이 사실을 모르는 건설회사 측에 전통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계산한 비용을 청구해 실제 비용과의 차액 수억 원을 빼돌렸다. 2015년 5월 구속된 홍 씨는 2016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의 2심 재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2017년 8월 30일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홍 씨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자격을 박탈했다. 여기까지가 숭례문의 복원을 둘러싼 형사적 판단이다.

민사소송은 복구공사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개시된다. 2013년경 단청공사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숭례문 곳곳에 하자가 발생했다. 복구된 지 3개월 만에 색칠된 단청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감사원의 감사 과정 등을 거친 후 2017년 3월 홍 단청장과 제자인 한 모 씨를 상대로 11억 8,000여만 원의 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무려 5년 5개월여의 긴 재판 끝에 지난 10일 1심 재판의 결론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부장 이민수)가 피고들의 책임을 80%가량 인정한 9억 4500여만 원을 손해배상액으로 판결한 것이다.

왜 정부가 주장한 금액의 80%만 인정된 것일까? 피고들이 ‘단청 박락은 화학 안료 등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전문 기관의 감정 결과 화학 안료의 사용이 하자의 유일하고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홍 단청장의 경험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른 공사 완성을 요구했던 정황도 고려되었다. 하자 발생에는 국가의 과실도 20% 존재한다는 뜻이다. 

단순 교통사고의 과실 비율에도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국보 제1호의 복원을 둘러싼 법원의 과실 비율 결정에 양 당사자가 쉽게 수긍할 것 같지는 않다. 과실 비율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홍 씨 측도 국가도 1심의 과실 비율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결국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민사소송의 최종적인 결론은 시간을 들여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죄’의 관계 

문화재는 대부분 유일무이하고 자칫 훼손될 경우 돌이킬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애당초 수리·복원 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엄격히 정해 놓는다. 이 자격을 둘러싼 사건도 꽤 있다.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제58조는 문화재수리기술자·문화재수리기능자의 성명이나 자격증을 대여하는 행위 및 대여받는 행위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까다로운 법리 문제는 불법으로 대여받은 자격증을 내세워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문화재 수리 계약을 따낸 것이 별도로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앞서 숭례문 부실 공사에서처럼 공사비를 빼돌리는 명백한 불법이 아닌, 단지 행정적인 ‘자격’을 대여받아 적정한 금액으로 하자 없는 공사를 해도 사기죄가 추가로 성립할까?

대법원은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제58조 위반죄와 사기죄의 성립을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불법 대여 행위는 “문화재 수리의 품질 향상과 문화재 수리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국가적 또는 공공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이지만 사기죄는 “보호법익인 재산권이 침해되었을 때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자격증의 대여가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지방자치단체 등의 재산권이 침해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20. 2. 6. 선고 2015도9130 판결).

‘속였지만 사기죄는 아니다’라는 이런 말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문화재의 수리·복원이 기본적으로는 민법상 도급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을 알아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도급 계약은 ‘일의 완성’과 ‘결과’의 창출이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자격증을 빌렸더라도 그 대여 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은 별개로 하고, 일이 제대로 완성되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숭례문도 아무런 하자 없이 완벽하게 복원이 이루어졌더라면 민사소송의 쟁점과 경과가 지금과는 다소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문화재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리중’ 팻말이 걸려있는 바람에 제대로 구경을 못해 아쉬운 관람객이 있다면, 문화재의 복원은 결코 간단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조금 덜 억울할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