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홍범도·박열 등 후손 없는 독립투사 위패 133위 모신 곳
현충원 한쪽에 표지판도 없이... 비 내리는 광복절 찾는 이 없어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순국선열의 독립 의지 다시 새겨야

 

 

[앵커]

72주년 광복절입니다. ‘무후선열제단’을 아십니까.

무덤도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따로 모신 제단인데요. 국립서울현충원 어느 구석에 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법률방송 현장기획, 김효정 기자가 비가 퍼부은 광복절, 무후선열제단을 다녀온 단상을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세게 쏟아붓는 빗속에도 광복절을 맞아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4년 광복절 행사장에서 흉탄에 서거한 고 육영수 여사 43주기 추모제에도 추모객들은 잊지 않고 찾아주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애국지사와 임시정부 요인을 추모하는 ‘충열대’ 뒤에 가려진 한 제단.

찾는 이 하나 없어 썰렁하기 그지없는 제단에는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유관순 열사,

1920년 만주벌판에서 최초로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최근 영화로 그 생애가 재조명되기도 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 열사,

기울어가던 국운을 되찾기 위해 고종 황제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통하게 생을 마감한 이상설 열사.

말 그대로 전설적인 독립투사들의 위패 133위가 나란히 한 데 모셔져 있습니다.

이 제단의 이름은 ‘무후선열제단’.

무후, 없을 무(無) 자에 뒤 후(後) 자입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일제의 감옥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숨진, 무덤도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함께 모신 제단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선열들이지만 이 제단의 존재나 위치 자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현충원 안에서도 현충문을 한참 지나 계단을 올라야만 갈 수 있고, 이렇다 할 표지판도 없어 ‘알고’ 일부러 오는 경우 아니면 찾기 자체가 힘들게 돼 있습니다.

심지어 틈만 나면 현충원을 찾는다는 초로의 독립운동가 후손도 잘 모를 정도입니다.

[백상현(61) / 독립운동가 후손]

“정확하게는 몰라요, 모르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볼 때는 참 답답하죠. 답답하고 좀더 많이 이 나라를 위해서 광복을 위해서 애쓰신 분들을 위해서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고 그런 기회를 정부에서 자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무후선열제단은 지난 1975년,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104위로 모셔졌던 위패는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며 남북 독립유공자 16위가 새로 모셔지는 등 133위로 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끝까지 민족통일의 여망을 놓지 못하고 남북협상을 시도했던 우사 김규식 선생, 정치·경제·교육 균등 ‘삼균주의’로 임시정부 이념의 주춧돌을 놓았던 조소앙 선생 등이 그 위패의 주인입니다.

불꽃처럼 살다 갔지만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확인 안 되는 비운의 독립운동가들,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이런 사연을 알 리 없습니다.

[백성우(24) / 학생 ]

“사실 잘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됐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좀 찾아 보고 생각해보고 관심도 가져보는...”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으로 도는 이들/ 돌보아 드린 이 하나 없고/ 기억마저 사라져 가므로/ 존함이나마 정성껏 새겨/ 따로 이곳에 모시옵나니/ 선열들이여/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우리들 제사 받으옵소서”

'무후선열제단 헌시비'에 새겨진 싯구입니다.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라는 헌시가 무색하게, 오늘 무후선열제단엔 꽃도, 향도, 찾는 이도 하나 없었습니다.

전국에서 광복절 기념행사가 떠들썩하게 거행된 오늘, 무후선열제단은 그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현충탑을 쓸쓸히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법률방송 김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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