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LCD 여성 노동자 희귀병’ 산재 인정... 원심 깨고 파기환송 "산재 원인 찾기 쉽지 않아...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보호 강화해야" 노동계 "산재 입증책임 노동자에 돌리는 잘못된 관행 바로잡아야

 

 

[앵커]

대법원이 오늘(29일)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희귀병을 얻은 여성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 2심을 깨고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이른바 ‘삼성 직업병’에 대해 산재 인정 판단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법률방송 현장기획, 대법원 선고의 의미와 향후 영향을 장한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서울 강남의 삼성 서초사옥입니다.

사옥 앞 인도에 이른바 ‘삼성 백혈병 피해자’ 등 가족과 활동가들이 천막을 쳐놓고 몇년째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대환 위원 / 삼성노동인권위원회]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 삼성이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과하고, 배재 없이 보상을 할 것. 이 세 가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에 있습니다.”

대법원은 오늘 삼성 LCD 여성 노동자의 ‘다발성 경화증’을 산재로 인정하는 첫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3부는 33살 이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이씨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및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크다는 게 대법원 판단입니다.

1, 2심은 "근로자의 질병이나 장해, 사망은 업무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상당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 입증 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쪽에 있다”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업무로 인해 발병되거나 악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씨가 입사 전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었던 점,

우리나라 평균 발병 연령 38세보다 훨씬 이른 만 21세 무렵에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한 점 등을 들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도 정황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한 겁니다.

이씨는 18살이던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LCD 패널 화질검사 업무를 맡았고, 이후 아토피성 결막염과 원인 불명 가슴 통증 등에 시달리다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발성 경화증은 신경섬유가 서서히 파괴돼 근육과 장기가 마비되는 불치병으로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 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점을 감안해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습니다.

그동안 이른바 ‘삼성 희귀 직업병’ 피해자들의 몇 건의 승소 사례가 있긴 했지만 1, 2심에서 패소한 근로복지공단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모두 고법에서 끝났습니다.

1, 2심에서 패소했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 판결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노동계는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잘못된 법 제도 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오늘 판결을 환영했습니다.

[이종란 노무사 / 반올림 상임위원]

“앞으로는 산재 인정이 보다 손쉽게 될 수 있도록 법이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 법률 개정까지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대법원의 오늘 판결로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법원 판례로 굳어질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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